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기위한 우리 인생의 수많은 질문에 유일한, 진정한 답은
예수와의 만남! 에 있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 인물들을 요한복음을 통해 한사람 한사람 나누고 있다.
그 시대 그곳의 성경인물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와 만나 주시며 진정 삶의의미 답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원한다.
==================
1. 나다나엘: 회의론자 “기독교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는가”
나다나엘 본인도 갈릴리 출신이면서 나사렛을 비하, 조롱과 멸시한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나사렛 취급한다.
교만과 멸시의 문제이다. 교만과 편견을 조심하라. 경멸하며 압축하지않도록 주의하라.
나다나엘은 그의 비웃음도 있었지만 그의 내면 깊은곳에는 영적욕구가 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는가. 하던 그가 불과 몇분 만에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고백한다.
=> 너무 성급한 고백이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나님의 사자, 천사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인간의 범죄로 하늘과 땅의 층간이 막혔다. 하늘로 이어지는 사다리. 즉 하나님의 임재안에 들어갈 길이 열린다. 예수는 자신이 곧 그 길이며 우주의 로고스요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다.
나다나엘에게 하시는 말씀~~ “ 저런! 내가 메시야로 보이느냐 내가 말타고 로마의 압제 세력을 전복할 줄로 생각했구나. 그래서는 인간 조건을 송두리재 변화시키고 악과 사망을 정복하고 세상을 새롭게 할수 없느니라. 그보다 훨씬 큰 일을 보여주리라. 나는 세계의 축이라. 내가 하늘과 땅의 층간에 구멍을 뚫었노라. 십자가로 너를 하나님의 임재안으로 곧장 인도할수 있느니라”
우리가 찾던 것보다 늘 무한히 더크고 우리의 기대를 능가하며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행하신다!
: 편견을 버리고 나다나엘과 함께 와서 보라. 우선순위와 기준이 바뀔 각오를 하고오라.
2.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The Insider and The Outcast
“ 기득층과 소외층이 있는 현세상,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니고데모(종교적 도덕적 내부자), 사마리아 여인(서회적 도덕적 종교적 외부인, 소외층,여인)
갈증을 망각하고 산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기에,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기에 갈증을 망각하고 산다.
사마리아 여인 => 삶에 만족이 없음을 지적하며 내가 너에게 생수를 줄수 있다 고 하심.
니고데모=> 교만한 자기만족을 지적하며 네가 거듭나야겠다고 하심.
니고데모: 성공한 민간 지도자, 산헤드린 공회원, 독실하고 정직한 바리새인, 겸허 넓은마음.
열심히 노력해 출생의 특권을 얻어냈는가? 우리는 무엇을 얻어내거나 기여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생명은 값없는 선물이다. 새로 태어남도 마찬가지다. 구원은 은혜다. 어떤 도덕적 노력으로도 구원을 얻어내거나 구원받을 공로를 쌓을수 없다. 하나님보시기에 잃어버린 존재다.
Q : 예수님은 왜 선량한 이 사람이 구원이 필요한 죄인취급을 하시나? 그가 천국자리를 얻기 위해 사실상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말씀하시나?
죄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서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이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모든 도덕 규율을 어기고 쾌락과 행복을 구원으로 추구하는 것이나, 착한삶과 도덕적 공로 때문에 하나님이 복주시고 응답해야한다는 종교인 니고데모나 같은 죄인이다. 자신의 선이 구원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구원자가 되고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다.
즉,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은 똑같이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다.
우리에게 생수가 필요하면 그 생수를 얻으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회개하고 자신의 필요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받아달라고 하고 회심해야 한다.
Q: 나는 아닌데? 종교는 없어도 선하게 살고 있는데. 선하기만 하면 되지않을까?
=> 가난한 어떤과부가 희생하며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착하게 살아야한다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 도와야한다고 말해왔다. 그 아들이 대학졸업 후 독립해 취직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대화하거나 시간을 보내지않는다. 어머니가 말한대로 늘 열심히 일하고 가난한 사람 도우며 착하게 살고 있다. 어머니와는 남남처럼 지낸다. 무엇이 중요할까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다. 훌륭한 도덕생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삶의 중심이 되셔야한다.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니고데모나 사마리아 여인과 똑같이 유죄다. 스스로 자신의 구주와 주님이 되었기 때문이다.
Q: 그녀는 어떻게 구원을 얻었을까?
예수님이 목마르셨기에. 우물에 가서 여인을 만났기에!
왜 그분은 목마르셨을까?
천지를 지으신 성자 하나님이 영광을 버리고 피곤하고 목마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으로 이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즉, 그녀가 생수를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 상의 “내가 목마르다” 육체의 목마름 이상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우리 몫의 형벌을 당하시느라 생수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관계단절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주적 갈증을 겪으셨기 때문에 당신과 나의 영적 갈증을 채워질수 있다. 그가 죽으셨기에 우리는 거듭날 수 있었다. 그분은 그일을 즐거이 하셨다.
3. 슬퍼하는 두자매: 마르다와 마리아
“신이신 예수가 인간의 슬픔을 알겠는가”
나사로의 병듦과 죽음.두 자매가 동일한 상황에서 똑같이 말했는데 전혀 다른 예수님의 반응.
to 마르다: 의심을 꾸짖으며 강하게 희망을 주신다. “절망하지 마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신성을 밝힘. 진리의 사역.
to 마리아: 슬픔에 들어가 비통해하며 눈물 흘리신다. 인성을 밝힘. 눈물의 사역
예수는 신인(God-man)
Q : 그분은 왜 그러셨을까? 왜 절대 권력자께서 우리의 연약함 속에 들어오셨을까?
악과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니라 죄의 결과이다. 이생의 불행은 우리의 이기심, 교만, 잔인함, 분노, 압제, 전쟁, 폭력 때문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노의 검을 들고 이땅에 오셔서 악을 처단하셔야 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에 들린 것은 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 손에는 못이 들려있었다.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심판을 당했다.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고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셔야함을, 나사로의 장례를 중단시키려면 자신이 장사지내져야함을, 죽은 나사로를 살린다면 종교당국에서 자신을 죽이려 들것을 아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시려면 친히 십자가지고 우리 몫의 심판을 당하셔야했다. 그래서 무덤에 다가가실 때 그분은 잠시후 벌어질 일대장관을 생각하며 웃으신게 아니라 분노로 치를 떨며 눈물을 흘리셨다. 자신이 치르셔야 할 대가를 알고 계셨다. 자신을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셨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아시고 겪으시면서 그분은 “나사로야 나오라” 외치셨다.
=> 우리와 신의 관계는 계단만 올라가면 만나는 1층과 2층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지 하늘에만 사는 분이 아니라 온 우주 땅 하늘 시간 공간을 초월해 계시며 우리를 창조한 분이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햄릿과 세익스피어의 관계에 더 가깝다. 햄릿이 셰익스피어를 얼마나 알수 있을까? 그가 희곡 속에 본인에 대해 써 넣은 만큼만 알수 있다. 햄릿은 아무리해도 자신의 저자를 알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그분이 우리 삶과 세상 속에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써넣으셔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하셨다! (C.S.루이스 기독교적 숙고)
: 실제 도로시 세이어즈의 < 피터 윔지 경 이야기>
4. 예수의 어머니: 혼인잔치
“답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가 진짜 답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이 깨어지고 흑암에 잠겨있기 때문이다.
그 일을 어떻게 하려고 오셨는가?
대중앞에 첫 선을 보이는 데뷔는 매우 신중하게 선택한다.
Q : 자신의 모든 취지를 알리실 본질적 신호로 왜 하필 잔치를 택하셨을까? 왜 요한은 첫 근본 표적이라 했나?
행사 진행을 맡은 사회자 연회장에게 물로 된 포로주를 갖다주며 난국을 해결한다 “ 내가 참 연회장이니 나는 잔치의 주인이니라” 자기부인 고난 당하는 희생을 겪는 일 모두 수단이며 목적은 축제의 기쁨이다. 부활과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어 모든 악 사망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함이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깊이 경험해보라!
이사야 25:6-8 종말의 날에 일어날 일
Q: 그저 포도주를 청하는 말을 왜 자신의 죽음의 때와 연결시키실까?
이 기적은 예수가 하러 오신 일의 표적이다. 사인이다.
신랑 신부의 난처함, 수치, 죄책에 직면해 있는 상태.
이 수치를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바로 포도주!
이 것을 만들 때 사용하신 것이 정결예식용 항아리. 즉 구약의 정결법, 제사법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신랑 신부로 묘사.
종말의 어린양 혼인잔치.
예수님이 사랑하신 백성인 우리는 신부가 되어 그분과 연합할 것이다.
“ 어머니여. 내 백성이 내 품에 안기려면 내가 죽어야 하나니앋. 내 백성이 기쁨과 축제와 복의 잔을 마시려면 내가 정의와 형벌과 죽음의 잔을 마셔야 하나이다.”
Q: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기위해 어떻게 하시는가?
자신의 기쁨을 다 잃으신다. 아버지와 함께 사시던 하늘을 떠나 일생을 오해받으며 외롭게 사시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다.
우리에게 자력 구원의 방법을 알려주러, 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러 오신게 아니라 친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께서 기쁨 일색인 혼인잔치 한가운데 앉아 장래의 슬픔을 마시셨기에 오늘 그분을 믿는 당신과 나는 세상의 모든 슬픔의 한 가운데 앉아 장래의 기쁨을 마실수 있다”
5. 최초의 그리스도인: 막달라 마리아
“ 정말 부활이 가능한가”
Q: 왜 예수 부활의 증인을 여인으로 하셨을까?
최초의 그리스도인? 예수께서 죽으셨고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나 사람이다.
당시 증인으로 세워주지도 않는 여자. 중요한 부활 사건의 증인으로 여인 그것도 귀신들려 치료받은 여인이라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복음서 기자가 기록하고 있다. 사실이기에 그렇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최초의 메신저 증인으로 삼으시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었을텐데 그녀를 택했다. 남자 아니라 여자를, 공동체의 기둥이 아니라 회복된 정진질환자를, 지도자급이 아니라 평범한 후원자를 택했다.
=>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나의 구원의 근거는 혈통, 도덕적 성취, 재능, 노력,이력이 아니다. 강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약자를 부르러 왔으며, 너의 스승이 아니라 구주니라. 너의 행위로 아니라 내가 이룬 일로 너를 구원하러 왔다.
Q: 왜 마리아에게 나를 붙들지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다 하셨나?
도마에게나 다른 여자들(마28:9)은 예수를 붙들게 허락하시는데 마리아에게 이렇게?
감격에 겨운 마리아가 ‘주님을 한번은 잃었으나 다시는 놓지 않겠나이다’ 필사적으로 그분께 매달리는 듯한 모습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곧 올라갈 터이니 내게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다. 내가 아버지 오른편으로 올라가거든 너를 버리지않고 내 영을 보내리리 너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밤낮 나의 임재와 평안과 사랑을 알수있느라”
믿음에 이르는 방식은 단 두사람도 똑같지 않다. 각자 다르게 접근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