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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나무숲 이야기

배추 아빠의 손

글쓴이 : 겨우나무 날짜 : 2013-07-15 (월) 11:37 조회 : 637
 
 
오늘은 알마티의 날씨가 포근했습니다.
 
지난번 지붕에 내린 눈이 고드름이 되고 그 고드름이 겨울 햇살에 녹아 똑똑 처마 아래로 떨어집니다.
요즘 풋풋한 배추 냄새가 농아인 센터에 가득한 것은 지난번 우쉬토베에서 가져온 배추가 마당 한 쪽에
쌓여있기에 그럴 겁니다.
 
오늘 김장을 하기 위해 그 배추를 다듬었습니다. 자루 속에 들어 있던 배추를 꺼내어 반으로 가르고 얼어
버린 잎사귀를 떼어내고 김장으로 담글 수 있는 것을 골라 소금에 절였습니다. 배추를 다듬으며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에 끌려 노란 배추 속을 떼어 먹었지요, 아, 맛과 향이 그렇게 달콤하고 향긋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배추 아빠의 손길과 마음이 배추에게 그대로 전해졌나 봅니다.
 
곡식과 채소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 게으른 농부는 가랑비를 보며 오늘은 비가 내리니 오늘은 쉬자하고, 부지런한 농부는
비가 내리니 농작물이 얼마나 잘 자랄까 하며 삽을 들고 논밭으로 간다고 합니다.
 
아마, 배추 아빠는 배추 모종을 시작하며 풍성하게 자란 배추를 생각했겠지요, 넓은 밭이 풍성한 배추로 뒤
덮힌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밤낮으로 배추를 키우는데 정성을 다했을 겁니다. 행여 물이 부족해서 말라버리지는
않을까, 벌레가 배추를 다 갉아먹지나 않을까, 배추 아빠는 그렇게 배추를 키웠을 겁니다.
 
그래요, 배추 아빠의 그 손길로, 그 마음으로 배추들은 쑥쑥 잘 자라 주었습니다. 아주 튼튼하고 속이 꽉 차고
맛과 향도 다른 배추들이 시샘을 할 정도로 말입니다. 배추 아빠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배추 아빠가 된 것 같았거든요.
 
얼마 전 배추 아빠는 커다란 차에 배추를 가득 싣고 알마티로 왔습니다. 잘 자란 배추들을 팔기 위해서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잘 자란 배추는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다투어 또
배추를 주문했습니다. 배추 아빠는 밭에 있는 배추들을 생각하며 주문을 받았지요, 배추를 가져다 줄 날짜를
약속하고 배추 아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누가 배추 아빠의 행복을 시샘했는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비가 내리고 날씨가 조금 추워지며 눈이 내리더니 그만 하룻밤 사이에 배추가 꽁꽁 얼어버린 것입니다.
배추 아빠는 급히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비에 젖고 눈에 얼어버린 배추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포기 배추라도 더 거둬들이기 위해 배추 아빠의 손을 더욱 빨라져 갑니다. 처음엔 손목이 아프고 팔이 저려
오더니 어깨가 빠질 듯이 쑤셔 옵니다. 그래도 배추 아빠는 손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배추가 그냥 밭에서 꽁꽁
얼어버릴 것을 생각하니 손을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번 배추를 가져다주기로 약속한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아 배추 아빠는 그 약속도 지켜야 했기에 일 분
일 초라도 서둘러야 했습니다. 트레일러 차를 부르고 배추를 가득 실었습니다. 이미 꽁꽁 얼어버린 배추였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쉬토베에서 알마티까지 8시간을 달려오는 동안 배추 아빠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습니다.
 
'얼어버린 배추를 받아 줄까?' '얼어버려 못쓰겠다고 안 받으면 이 많은 배추를 다 어떡하지?' 
 
짧은 겨울날이라 캄캄해서 알마티 농아인 센터에 도착 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바로 배달을 하기 위해 
배추는 내리지 않고 그냥 트레일러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배추 아빠는 약속한 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배추가
얼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 배달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든 배추 아빠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정성 드려 키운 배추가 배추 아빠의 그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려 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잘 키워주어서 고맙다고,
 
다음날 트레일러가 알마티 시내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배추를 모두 농아인 센터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문한 분들에게 배추를 배달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요, 배추 아빠가 걱정 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터무니없이 값을 깍아 버렸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배추 아빠의 마음을 정말 아프게 했지요. 또 직접
 배추를 가지러 오신 한 분은 배추 속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두고 갔습니다. 배추 아빠는 정말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웃는 얼굴로, 추운 겨울 날씨에 손이 발갛게 부르트도록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추 아빠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해주신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배추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배추 아빠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비록 꽁꽁 얼어버려 팔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배추들이 행복한 것은 자신들을 사랑해준 배추 아빠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 행복해 하는 배추들을
가지고 담근 김장은 얼마나 맛있을까요, 그 김장 속에는 배추를 사랑하는 배추 아빠의 손길과 마음, 그리고 사랑이
녹아 있기에 더욱 맛있을 겁니다.
 
이렇게 맛있고 향긋한 배추로 잘 키워주신 배추 아빠에게 감사드리며,
 
배추 아빠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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