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통일 2

글쓴이 : 활산 날짜 : 2015-01-13 (화) 00:54 조회 : 1224
 
 
2. 성경적 근거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단일국가로의 통일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필자는 한 민족의 형제애의 회복은 성경이 증언하고 있지만, 한 국가 형태의 민족 통일은 성경적 증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구약에 나타난 증거를 보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된 때가 있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시절인 BC 931년에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졌다. 남북 분단 시대는 북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209년간 계속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분열기간 동안 어느 왕이나 백성, 또는 예언자가 나타나 이스라엘의 통일을 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기에 하나가 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전혀 없었고, 하나님도 통일의 노력을 막으셨다. 열 지파를 중심으로 북 이스라엘이 떨어져 나갔을 때 남 유다 르호보암은 군사 18만을 일으켜 북 왕국을 치려했다. 그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스마야가 이들을 만류한다. 그 과정과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기를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왕상 12:21-24)
 
형제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분열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솔로몬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이 내린 심판이었다. 르호보암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물러간다. 물론 이후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혀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은 국지전이 있었지만 이는 통일 전쟁 차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합 가문과 유다 가문이 통혼을 하기도 하였다. 최후의 일전은 북 왕국이 멸망하기 직전 북 이스라엘 왕 베가가 시리아 왕 르신과 연합하여 유다 아하스를 공격한 전쟁이었다. 불리해진 유다는 앗수르 디글랏빌레셋에게 원병을 청한다. 이 때문에 결국 북 왕국이 망하고 유다는 속국으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고 만다. 이 전쟁 초기에 이스라엘 베가의 군대가 유다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때도 오뎃이라는 선지자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책망한다.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저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가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를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가 형제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이에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들은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 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대하28:6b-15)
 
남 왕국과 북 왕국은 형제관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는 것 보다는 그들이 형제 관계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북 왕국이 망한 후 북 왕국의 지도층들은 앗수르의 식민정책에 의하여 다른 민족들이 사는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다. 남은 지도층의 일부는 남 유다 왕국으로 흡수되었고, 사마리아 지역에는 가난한 이스라엘 민중들만 살게 되었다. 이곳은 타지역에서 온 이민족이 정착하면서 혼합 민족이 된다. 남 유다도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고 그 지도층들이 포로로 끌려간다.
 
BC 538년에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공동체는 BC 515년에 성전을 건축하고, BC 445년에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한다. 이 과정에서 사마리아 지역에 거주하던 세력들이 성전 공동체에 함께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만 귀환한 배타적 유대 공동체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마리아 종교라는 것이 탄생한다. 사마리아 종교는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우고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였다. 유대 공동체와 사마리아 종교 세력은 서로 앙숙처럼 갈등하며 지냈다. 요한복음에는 그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싫어하여 갈릴리와 유대를 왕래할 때 가장 빠른 길인 사마리아를 관통하는 길로 가지 않고 돌아서 갈 정도였다. 예수님은 이런 금기를 깨고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며 그 여인을 구원하신다. 예수는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전과 그리심 산 성전을 대체하는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드리는 예배 공동체를 제시하신다.
 
사마리아는 사도행전 1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세 번째 선교 명령지가 되었다. 사마리아는 빌립에 의해서 전도되어 교회 공동체의 형제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상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의 갈등의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예수와 원시교회였다.
 
이처럼 유구한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님의 중요 관심사는 제도적인 하나 됨이 아니라 민족간의 심리적 경계선을 허무는 형제애의 회복에 있었다. 통일의 비전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에스겔의 환상이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지역에서 예언한 선지자로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남북 왕조를 하나로 만들 것을 약속하신다.“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37:15-22), 이는 분명히 1민족 1체제의 통일 왕국을 내다보는 비전이다.
 
그러나 이 비전의 강조점은통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의회복에 있다. 만약 이 비전이 남북 분열기 어간에 보여진 환상이라면 통일의 비전이겠지만 북 왕국이 망한지 약 150년 후의 비전이란 점에서 통일 보다는 회복에 의미가 있다. 분열이 민족의 역량을 분산시키고 열방 가운데 부끄러운 모습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회복될 나라는 이처럼 갈라지지 않은 다윗시대와 같은 강성 대국을 이룰 것이라는 환상이라 할 것이다.
 
민족이 단일국가를 이루는 것이 무조건적인 최선은 아니다. 성경의 관심은 체제의 하나됨이 아니라 인류의 형제애의 회복에 있다. 성서는 민족 간의 차별이나 갈등은 분명히 해결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에베소서 214-16절은 이렇게 증거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법조문에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율법적 장벽, 심리적 장벽을 허무셨지만 이들을 정치적인 한 나라로 만드신 것은 아니다. 우리의 육신은 나라와 민족에 매여 있지만, 주 안에서 우리의 영혼은 국경을 초월한다. 가까이는 북한으로부터 멀리는 아프리카 오지의 검은 형제들까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성경에서 증거 하는 형제애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통일이야기는 영구 분단론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단일국가 체제를 이루는 통일은 성경이 증거하는 바도 아니지만 한반도 상황에서 그것은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이 주어진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상호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형제애적 차원에서 돕는 일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13:16) 형제애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통일론은 단일국가 상을 상정하는 통일론이 가지고 있는 저항과 관념성을 피하고 통일에 실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통일론이다. 이렇게 형제애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통일에 가장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 과정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1972 체결된 Basic Treaty (German: Grundlagenvertrag) 통해 동서 교류의 토대를 놓게 된다. 그 토대 위에 1976년도에는 동서독의 우편물 교환 관련 협약(Abkommen über Post- und Fernmeldewesen)이 체결된다. 그 바탕 위에 다양한 동서교류가 실현된다. 서독은 동방정책을 추진했지만 통일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브란트 수상은 1민족 2국가 체제를 받아들였다. 통일은 먼 장래에 이루어질 일이며, 일단은 동독 국민의 인간의 존엄성과 내면생활의 문제에만 집중하였다. 서독은 1972년부터 1989년 통일이 될 때까지 약 626,700억 원의 현금과 물자로 지원했다. 민간 부분에서는 448,800억원이 지원되었다. 1987년 한 해 동안 150만 명의 서독인이 동독을 방문했으며, 동독으로 7,500만 통의 편지와 2,400만 건의 소포가, 서독으로는 9,500만 통의 편지와 900만 건의 소포가 전달되었다. 이미 70% 이상의 동독 주민들이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서독의 동방정책은 형제애의 회복에 중심을 둔 인도주의, 인권회복, 관계정상화 정책이었다. 형제애가 회복된 후의 통일은 쉬운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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