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에 함께 했던 소록도

글쓴이 : 활산 날짜 : 2013-08-20 (화) 17:35 조회 : 1237
 
 
 2010년 7월4일, 251번째 편지 : 소록도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즈음 벚꽃이 피는 봄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농아사역을 하고 있는 활산 이민교 선교사의 안내로 전남 고흥 소록도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하얀 사슴이 산다고 해서 소록도, 참 아름다운 섬입니다.
그리고 이 섬은 유배지와 같이 한센씨병 형제들이라고 불리우는 나병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몸의 부활과 영의 거듭남을 경험하였었습니다.
섬에는 실제로 몇시간 있지 않았는데, 영적인 파장, 느낌, 가슴... 하늘과 땅 차이가 되었습니다.
전 당시에 솔직히 섬과 바다가 보고 싶고, 바람을 쐬고, 쉬고 싶어 여행을 하는 마음으로 소록도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런데.... 소록도에 가니 님들이 있었습니다.
소록도에 가니 문둥병자는 없고, 내 영적인 형제, 아니 영적인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의 아버지, 어머니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며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감사하면서, 만족하면서 살지 못한 삶의 부끄러움,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품에 살지 못하는 그 죄송함이 가득 올라왔지요.
가슴은 고요해지고, 깊어지고, 호흡은 길어졌습니다.
언젠가 한번 와본 듯한 길, 나무, 공원, 느낌, 기운, 나를 정돈케 하고 차분케 하는 다정한 얼굴들...
처음 가보는 곳인데, 무척 낯이 익은 곳, 언젠가 한번 와본 곳...
저에게 그리운 곳이 있었고, 무엇인가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잊고 있다가 다시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비록 저의 사는 모습이 못마땅하고 부끄러워 그들을 마음껏 안아주지 못하고 뒤에 서서 눈물 훔쳤지만 내 고향이었습니다.
섬에 갇혀서 사는 그네들이 측은하거나 불쌍하거나 그런 일말의 '동정심'같은 사치스러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고백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문둥병을 앓기에 예수 믿는 '일' 밖에 할 수 없답니다.
그런 그네들의 삶의 고백은 어두운 그늘 하나 없이 그들의 해맑은 얼굴, 표정, 말씨, 기운에서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행복 속에 그네들이 있었습니다.
발음조차 엉크러져 괴성에 가까운 그네들의 찬송 소리에서 천상의 음성, 사람의 멍든 영혼을 치유하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새벽과 낮 12시만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교회에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멀리 떨어진 가족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그런 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기도하고 있는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북의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통일이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그들을 저버린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리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찬양은 온 영혼을 울리는 힘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듣지 못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그런 활기, 신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아, 이제 이런 찬양, 이런 감사를 올려드려야겠구나,
정말 행복하고 뜨거운 삶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과 불평에 가득해 살아가는데, 그 소록도에는 그렇게 작은 천국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은 찬송가 291장,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이었습니다.
우리는 장례식에야 부르는 장송곡이지만, 이들은 박수치며 아코디언과 하모니카를 불며 행진곡으로 부르고 있었지요.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에서 하늘의 산 소망을 가지고, 무엇을 기다리고 바라보아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감사의 기적을 알려주고, 우리에게 사랑을 심어주는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어진 삶을, 처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돌아보면 감사가 아니고, 기적이 아닌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함께 예배하러 모여 있는 것, 걸어서 온 것,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사랑을 품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또 무슨 기적을 바랄까요?
지금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예수를 따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인가요?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름에 흔쾌히 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적기에 버릴 것도 적었습니다.
그래서 쉬웠습니다.
예수를 따라 나서는 데는,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릴 수 있는, 비울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거지요.
그래서 어린아이들과 낮고 천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께 더 가까이 있었습니다.
어른들과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 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따라서 사는게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가야 하는게 많아서 예수님을 따라갈 겨를이 없는 거지요.
 
있는 것, 가졌다고 하는 것 내려 놓고 비워놓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지금이....
 
* 토론토 그레이스힐 공동체 교회 
깊은산 오동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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