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우린 노동과 기도수련회를 갖는다.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수련회나 수양회를 우리는 지양한다. 100년넘게 지탱해온
우리들만의 잔치인 수련회를 일치감치 버렸다. 그리고 과감하게
노동과 기도수련회라는 이름으로 계절 중 가장 치열한 한 여름을
농촌의 일감이 있는 곳의 교회를 거점으로 하여 노동을 한다.
이번 여름은 충청북도 보은의 속리산 자락 끝인 내속리 교회에서
노동과 기도수련회로 "나눔의 삶, 그 즐거움"이란 주제로 저녁엔
교우들과의 공동체 나눔의 시간, 그리고 낮엔 고추밭에서 고추
따기로 수련회를 가졌다. 그리고 주일학교와 중고등부는 현지
교회의 어린이들과 학생들과 연합으로 성경학교를 가졌다.
영성은 하늘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하늘의 영성, 그
거룩한 것을 사모만 했지 별로 거룩의 영성의 맛도 못보면서
괜실히 비현실적인 위의 영성만을 추구하는 구호만을 외쳐온 것이
사실이다.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그 거룩한 하늘의 영성을!
그러나 우린 이번에 땅의 영성을 경험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땅으로 오신 예수, 냄새나고 더럽고 추한 마굿간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땅의 비하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속에서 주님을 만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긴 고추밭에서 장년 42명, 학생들 27명
약70여명의 교우들이 고추따기를 하면서 우리는 땀으로 범벅,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면서 한나절 빨간 고추를 땄다.
자그만치 1톤 트럭에 2번씩이나 나르는 고추를 수확했다.
아! 물론 일면식도 없는 주인이지만 우리는 현지 교회의 목사님이
지정해 준 밭에서 열심히 땀을 흘렸다. 솔직히 강남의 젊은 엄마들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4시간 동안
이어진 노동은 가장 낮은 자리를 경험하게 했고 노동이 아니라
실제 기도라는 사실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고추수확을 하면서
한분도 꾀를 부리는 이는 없었다. 그게 기도아닌가?
고추밭 고랑에서 쪼그리고 무릎으로 기어다니면서 고추를 따는 일
그것은 정말 incarnation을 경험하는 진정한 communion의 시간
이었다. 아! 그분의 오심, 밭고랑에서 빨간 고추를 따면서 만난 주님!
그리스도의 하향성, 그리스도의 낮아짐! 감격이 아닐 수 없다.
하루 종일 설교만 듣고 기도만 하고 찬송만 하고. . . 잘 먹고...
이게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수양회였다. 하지만 실전(세상)에서는 맥을
못추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우리끼리 큰소리내는 것, 좋은 점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 우리끼리다. 주일날도 우리끼리, 다른 모임도
우리끼리, 봉사를 해도 우리끼리, 수련회를 해도 우리끼리!
그걸 타파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자주한다.
교회에서 뭘 잘하려고 하지 말고(예배만 잘드리려고 하지 말)
집에서 믿음 생활 잘하고 직장과 사업장에서 예수 잘 믿어야 한다고!
즉 세상 사람들과 진짜 잘 지내야 한다고. . .
우리가 쌓아놓은 담을 헐고 과감하게 밖을 향해 나가 세상에 빛을
밝히는 자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소금이 되길 소망한다.
지난 주 키르키즈스탄을 다년온(16명)나를 향해 내 친구 이의용
교수는 "박목사, 강남의 소금이 되라, 강남에서 큰 덩어리 소금이
아니라 잘게 아주 작게 부숴진 소금이 되라"고 했다.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면서 "난 죽었다. 박목사 죽었다."
하는 소리를 연발 질렀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동과 기도수련회를 통해 교회의 건강성과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늘 개달음을 갖도록
기도해 주는 친구들과 동역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