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메달 받는 평양국제축구학교 학생들(평양=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24일 오후 북한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2015 제2회 국제 유소년 U-15 축구대회에서 준우승한 평양국제축구학교 학생들이 메달을 수여받고 있다. 연합뉴스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제2회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를 취재차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의 수도 평양에 한국 언론이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이후 처음이다.
지더라도 철학 '중원 거친 패스플레이' 버리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선수 만들겠다"
(평양=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본 한국 축구 팬들은 그해 또 하나의 작은 충격을 감내해야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축구천재' 이승우와 장결희를 앞세운 최진철호가 9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6(16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북한에 패배한 것.
한국이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북한에 지며 우승을 놓치자 팬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연합뉴스는 25일까지 열흘간 2015 제2회 국제 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방북 이튿날인 17일에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설립된 평양국제축구학교를 KBS와 함께 한국 언론 최초로 방문했다.
또 대회 기간 이 학교의 현철윤 교장을 수차례 만나 북한 축구의 새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군대를 연상케 하는 조직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상징되던 북한 축구에 '생각'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평양 국제축구학교에 적힌 구호(평양=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17일 북한 평양국제축구학교 정문에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참된 아들 딸이 되자'라고 쓰여 있다. 이 학교는 지난 2013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어졌다. 연합뉴스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제2회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를 취재차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의 수도 평양에 한국 언론이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이후 처음이다.
◇ 거듭되는 8년간의 테스트…정예만 남긴다 =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운영된다.
7세부터 14세 과정까지 있는데 모든 학년에 걸쳐 매 학기 테스트를 통해 '열등생'을 걸러낸다. 빈자리는 각지에서 새로 선발된 유망주들이 채운다.
신입생과 편입생을 선발할 때에는 신체조건과 기본기도 보지만 두뇌 회전이 빠르고 적극적인 성격의 학생을 최우선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퇴교와 잔류의 기준을 나누는 기준은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가'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2013년 80명 정원으로 개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규모는 그 두 배인 160명이었다.
교육은 연습경기보다는 철저히 기본기 위주로 이뤄진다. 정사각형 모양의 학교 건물 가운데에는 농구 코트 크기의 인조잔디 연습장이 있었는데 마침 여학생들이 볼 경합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발재간과 안정된 볼 키핑이 인상적이었다.
축구만 배우는 게 아니다. 일반 교과목과 사상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평양국제축구학교의 영어성적표(평양=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17일 북한 평양국제축구학교 건물 복도에 영어 단어 시험 성적표가 붙어있다. 이 학교는 지난 2013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어졌다. 연합뉴스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제2회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를 취재차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의 수도 평양에 한국 언론이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이후 처음이다.
복도 벽에는 학생들의 영어 과목 점수와 등수가 적혀 있었다. 축구 이론 강의도 영어로만 이뤄진다고 한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매년 협약을 맺은 해외 클럽이 학교를 방문해 남학생 가운데 유망주를 선발해간다. 올해는 안정환이 뛰었던 팀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페루자(이탈리아)가 입단 테스트를 치를 예정이다.
남는 학생들은 실력에 맞춰 4.25체육단, 횃불, 기관차체육단 등 명문팀에 입단, 기존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편입된다.
◇ 지더라도 철학을 버리지는 않는다 =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 3경기와 토너먼트 2경기를 치렀다.
학생들은 지고 있건 이기고 있건 공격할 때 좀처럼 '뻥축구'를 하려 들지 않았다. 오로지 중원을 거친 패스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유난히 원터치 패스가 많은 점도 눈에 띄었다.
14세가 졸업반인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이번 대회 명단에 13세 선수도 5명이나 넣었다. 1∼2세 많은 형들을 상대로 매 경기를 치른 셈이다.
이들은 몸싸움과 스피드에서 아무리 밀려도 중원을 거친 패싱 게임을 고집했다.
기본기 익히는 북한 축구소녀들(평양=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17일 북한 평양국제축구학교 건물 안쪽의 인조잔디 훈련장에서 여학생들이 기본기 훈련을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 2013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어졌다. 연합뉴스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제2회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를 취재차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의 수도 평양에 한국 언론이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이후 처음이다.
북한 최고의 축구 엘리트들로 구성돼 사실상 U-15 국가대표팀이라고 봐도 무방한 4.25체육단과의 결승전에서 평양국제축구학교는 1-6으로 대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대회의 공동 주최자로서 당연히 우승 욕심이 있었을 테다. 마지막 한 경기 정도는 결과를 위해 밀집수비와 역습축구라는 실리적인 선택을 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고집은 이어졌다.
◇ "그라운드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선수 만들겠다" = 현 교장은 학생들이 보여준 패싱 게임에의 집착은 평양국제축구학교의 축구 철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격은 스페인의 티키타카, 수비는 독일의 효과적인 압박을 지향하는 게 평양국제축구학교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모든 팀이 스페인과 독일의 축구를 꿈꾼다. 문제는 선수들이 이를 구현해낼 수 있느냐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그 답을 '생각'에서 찾고 있었다.
현 교장은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패스와 두뇌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도한다"고 힘줘 말했다.
북한 평양축구학교 현철윤 교장(평양=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17일 북한 평양 국제축구학교 앞에서 현철윤 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 2013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어졌다. 연합뉴스는 16일부터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제2회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를 취재차 북한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의 수도 평양에 한국 언론이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5.24 대북 제재 이후 처음이다. 2015.8.26 ahs@yna.co.kr
이어 "그라운드에 선수를 풀고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면서 "11명의 선수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신의 두뇌를 돌려서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축구라는 스포츠는 90분간 오만가지 변화가 생긴다. 이 모든 변화에 따른 대처법을 선수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평양국제축구학교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북한 축구는 과거 조직력과 스피드,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체력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 방법은 유소년 때는 효과를 볼 수 있으나 결국 창조력이 결여된 반쪽짜리 선수를 낳는다.
과거 아시아 강호였던 북한 축구는 그렇게 점점 하강 곡선을 그렸고 한동안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북한 축구계는 과거의 방식이 드러낸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현 교장은 "'생각하는 축구'가 공화국 축구의 새로운 조류"라면서 "그 새로운 조류를 평양국제축구학교가 만들어가고 또 이끌어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우리 학교 졸업생들을 앞세워 10년 안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겠다"고 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