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위대한 신앙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 속에서 탐심과 시기심과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진 나의 옛사람의 죽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가롯 유다는 돈 때문에 넘겨주었고 빌라도는 정치적 자리보전을 위해 넘겨주었고 유대지도자들은 시기심 때문에 넘겨주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를 죽는데 넘겨준 분은 하나님아버지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를 죽는데 내어주셨다고 할지라도 그는 마지못해 십자가에 오르신 게 아니다
십자가에 오르신 것은 자신의 기쁜 뜻대로 하신 것이다.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죽는데 기꺼이 내주셨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 극진한 사랑,,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사랑에 감동하여 조금이라도 그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것이 우리의 참된 영성의 시작이고 마치는 점이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기도하는 영성의 모습이다.
첫째 갈릴리 사역을 처음 시작하시며 새벽미명에 기도하는 장면(1:35-39)
둘째는 오병이어를 행한 후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고 자신은 저물 때까지 기도하신다(6:45-46) 셋째는 십자가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14:32-42)
주인이 돌아올 때를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있던 성실한 문지기처럼 예수의 제자들도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했다. 막13:34-35 저물 때, 밤중, 닭울 때, 새벽. 4때를 정해 깨어있으란 말씀을 막14장 겟세마네의 수난 이야기와(14:17,32, 71, 15:1) 연결짓고 있다. (58)
예수 십자가 정신에 함축된 정신 네가지
사랑의 정신. 섬김의 정신, 자기희생의 정신, 겸손의 정신
자신의 죽음을 설명한 말씀은 두군데, 마지막 만찬에서 나오는 떡관 잔에 관한 말씀(마26:17-29, 막 14:22-25, 눅23:14-23)과 사흘 만에 손으로 짓지 아니한 새 성전을 짓겠다는 말씀이다.(마26:61, 27:40, 막14:56)
마지막 만찬은 세상을 떠나기 전 제자들과 나눈 고별식사의 의미를 지녔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의 죽음으로 시작될 새 언약시대의 성취된 구속을 축하하고 그 완성될 축복들을 고대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사야 5장, 마가복음 12장의 포도원 비유. 이를 통해 하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은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왜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는 강도들인지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손으로 짓지않은 새 성전 공동체 교회를 세울 것이며 그는 이 공동체의 ‘모퉁이 머릿돌’이 될 것이다고 말하고있다.
요한복음을 보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시되는 자리였다.
십자가에 들려진 예수. 예수께서 죄수로 십자가에 매어달리는 순간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가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십자가는 예수의 영광이 계시되기 시작한 때이다. 십자가를 통해 영광의 자리에 오르신 예수ㅡ 지금은 하늘보좌에서 온 인류의 구원자로 다스리시는 예수, 그의 우주적 왕권을 인정하고 따르는 땅위의 모든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시는 주체가 되신 예수, 그는 언제나 우리의 모든 영적 생활의 중심에 계신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계시되는 자리이다.
날마다 십자가를 깊이 묵상할 때 우리는 갈보리 언덕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좀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이 참된 영성이 추구해야할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바울서신에 나타난 십자가 영성
이신칭의 모든 참된 영성은 은혜로 얻은 구원이 헛되지 않아 거룩한 삶을 산출하게 되고 점차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 영생에 이르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율법폐지? 성취? 십자가 구속은 신자들에게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면제 시켜준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건이다.
하나님의 참 백성은 율법과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형성되지만 그들의 삶은 율법과 관계없이 믿음만 치켜세우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성취할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지혜 세상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계시된 신적 지혜이다
십자가복음. 그것은 하나님께 기원을 둔 신적지혜이다. 예수의 십자가죽음은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한 사건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갈 1:4
고난을 넘어 영광으로. 바울은 예수의제자로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하는 고난은 불가피한 요소라 생각한다. 현 세대는 악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바울은 고난과 영광의 관계를 종말론적 시간구도 속에서 이해한다. 현 세대는 신자에게 고난의 때이고 미래는 영광이 그에게 계시될 때이다. 롬8:18 바울은 고난과 영광의 관계를 우주적인 전망 속에서 이해한다. 현세대가 신자에게 고난의 때인 것처럼 피조세계도 지금 함께 탄식하며 고통 겪고 있다. 바울은 신자가 고난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216-218)
진정한 영적능력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계신” 고후 13:4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데서 나타난다.
십자가는 바울의 신학세계 속에 존재하는 복합상징이다.
십자가는 새 언약시대를 여는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율법의 저주를 친히 짊어지심으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만들었고(갈3:13)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계시한 사건이었으며( 롬1:17, 5:8)
하나님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신 사건이었으며(갈1:4) 세상의 지혜와 인간의 능력을 무효화하고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었다(고전 1:21-31)
또한 십자가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본받아야할 순종의 패러다임이다.
죄인들을 살리기 위한 자기희생적 순종이었다.
십자가죽음은 예수가 모든 사람을 종으로서 섬긴 최대의 표현이었다.
예수께서 인류를 섬기는 종의 모범을 보이셔서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면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하는 제자들이라면 연약한 형제의 짐을 짊어짐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새 언약의 속죄제사였다. 영문 밖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삶은 새로운 형태의 제사를 요구한다.
예수 십자가 후 우리의 예배에 어떤 변화 있나?
1. 하나님의 임재장소 속죄장소 예배장소가 바뀌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신 영문 밖이다. 이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성령의 전은 교회 공동체이다. (엡 2:22, 벧전2:5)
2. 제사를 집전하는 사람들이 바뀌었다. 특정한 제사장그룹이 아닌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3. 제사의 유형이 바뀌었다. 동물의피에서 송도들의 변화된 순종의 삶 자체다.
새 언약 백성은 이제 더 이상 성전건물도 제사장도 제사의식도 제단도 제물도 필요치 않다.
그럼 이제 어떤 제사가 필요해?
1) 찬미의 제사 (벧전 2:15) 입술의 변화 . 롬3:13-14
2) 선행의 제사 (벧전 2:16) 악, 정욕이 이끄는 대로 살던 삶에서 이제 나타나는 삶의 열매는 10:22, 24, 롬12:1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을 때 그들이 본받아야할 최상의 모델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의 고난이 어떻게 우리에게 본이 되는가?
1. 베드로는 기독교인들의 고난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기독교인이 하나님께 받은 소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다. 십자가 복음은 원래 세상 사람들에게 ‘거리낌, 거침돌’ 믿지 않는 자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였다. 복음메시지는 언제나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적지혜이다.
2. 자신의 소명을 수행할 때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모델은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그리스도 자신의 소명과 연장선상에 있다. 베드로는 사 53장 십자가 고난의 대속적 의미를 설명한다.
3. 고난당할 때 기독교인은 예수께서 보이신 태도를 본받아야한다. 그는 사실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의 태도는 2:23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다. 롬12:17,21
기독교인은 고난 중에서도 예수의 인격과 삶의 흔적을 나타내는 자들이다. 그것이 바로 참된 영성이 지닌 중요한 특징중하나다. (301-304)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형제사랑은 마땅한 의무다. 십자가 구속의 부정적인 측면은 우리를 모든 불의와 죄에서 깨끗하게 한 사건이란 점, 긍정적인 측면은 이웃사랑을 행할 줄 아는 새 존재는 창조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교회의 정체성은 ‘바른믿음의 고백’ orthodoxy 와 ‘참된 사랑의 실천’ orthopraxy을 나타내는 공동체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은 공동체를 창조한 사건이다. 참된 영성은 세상을 떠나 초연하게 홀로 살아가는 고독한 삶이나 세상과 격리된 나만의 영적체험의 추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 속에서 사랑과 섬김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영성은 사랑으로만 완성된다.
어린양이 성취한 구속의 개념정리
1. 십자가 사건은 “사람들을 피로 산 ”사건이다. 계1:9절
속전, 대속물의 개념이다. 어린양의 희생적 죽음은 ‘그의 피로 우리를 해방한 ’ 사건이다.
2.어린양은 사람들을 그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뜻한다.
3. 어린양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 하나님이 백성이 생겨났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민족만아니라 유대교의 협소한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전조, 우주적 통치를 말한다.
4. 그리스도는 그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형성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