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생각 思
이민족의 시험문제
38선은
하나님께서 이민족을 시험하려고 출제한 마지막시험 문제다. 합격하면 사는 것이고,낙제하면 영원히 망하고 말 것이다.
38선은
민족의 가슴을 쪼갠 선이다.
허리신경을 마비시킨 중풍병자 허리 밸트 선이다.
38선은
칼로 해결할 수 있는 선이 아니요. 기도로,사랑으로, 삶으로 해결해야 할 선이다.
38선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가?를 깨닫고 살아내기만 하면 이제 곧 없어지는 선이다.
한양에 전염병이 돌았다!
그대는 형편없는 예수쟁이 아닌가?
한양에 어느 날 멋진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새문안교회의 예배당이었습니다. 이 예배당은 소래교회 예배당에 이어 조선 사람들이 순전히 자력으로 세운 두번째 예배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문안 교회 건축은 전염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척 감동적입니다.
처음 언더우드 선교사의 사랑방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몰려들어 건물이 시급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문안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농부와 가난한 상인들을 비롯 하층민이어서 건축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895년 여름에 서울 전역에 무서운 전염병인 콜레라가 발생했습니다.
서양 의료 선교사들과 목사 선교사들은 콜레라 퇴치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앞서 1886년 콜레라가 서울에서 발생한 바 있었는데, 당시 6,152명이 희생된 상태였습니다. 서울 인구 15만명 대비 100명당 5명이 죽은 꼴이었으니 당시 상황은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에게는 백신이 있었기에 한 명의 감염자도 생기지 않았고, 선교사들의 지침을 따른 사람들은 피해자가 거의 없었으며, 또한 많은 콜레라 환자가 완치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독약을 뿌리고 음식을 날 것으로 먹지 말고 잘 씻으라는 선교사들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미신을 의존해 무당을 찾아가 비위생적 방법을 따른 사람들이 대거 콜레라에 걸려 희생되었습니다.
그 후 1895년, 서울에 다시 콜레라가 퍼지자 조선 조정은 살고 싶으면 모두 서양 선교사들의 기독교 병원을 찾아갈 것이며 그들의 지침을 따르라고 시내 곳곳에 방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언더우드를 중심한 선교사들의 인력은 턱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언더우드는 조선인 자원 봉사자들을 모집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언더우드가 설립해서 사역했던 새문안 교회 성도들이 대거 봉사자로 자원했습니다. 선교사들과 봉사자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콜레라에 맞서 백성들을 구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콜레라가 마침내 퇴치되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언더우드와 선교사들에게 현금과 큰 선물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나아가 선교사들을 도와 목숨을 걸고 콜레라 퇴치에 앞장선 조선인 봉사자들에게도 큰 상금을 하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 새문안 교회 성도들이었던 그 자원 봉사자들은 그 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가난한 삶으로 어려움 당하고 있었음에도, 교회 건축이 긴급한 상황에서 그들은 그 돈을 감히 자신들을 위해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교회 건축을 위한 그들의 오랜 기도의 비상한 방식의 응답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돈은 사실은 그들의 목숨 값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봉사의 대가로 받았던 상금을 교회 건축을 기꺼이 내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문안 교회는 최상의 건축 자재를 사용해서 크고 널직한 최고의 예배당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조선 교회의 힘이었습니다. 최초의 예배당 소래교회 예배당과 더불어 이렇게 한국의 처음 두 교회의 예배당은 순전히 조선인들의 자력으로 건축되었으며, 이것은 추후 한국 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후 어떤 교회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부분적인 지원 하에 건축이 이루어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선인의 교회는 조선인의 힘으로 세우는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 김경열 <냄새나는 예수>(홍성사)에서 발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교회는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해 조선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태도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분들은 중국이 전염병으로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특히 선교사들을 대거 추방하고 기독교를 박해한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을 수 있을지언정 그걸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기독교를 욕먹게 하는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너무 많은 국민들이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면서 미개한 민족이라며 비하합니다. 기독교인들마저 여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박쥐를 먹고 생쥐를 산채로 먹는 미개한 중국인은 무조건 입국금지하고 당분간 중국에겐 국경봉쇄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입니다.
역시 이해합니다. 중국인들이 대거 국내로 들어와 한국이 전염병으로 초토화되어선 안되니까요. 하지만, 배후에는 중국인에 대한 깊은 혐오감과 폄하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나아가 어떤 보수 기독교인들은 대놓고 저주합니다. 중국은 빨갱이, 공산당, 사탄의 나라니 전염병으로 다 죽어도 싸다고.
교회는 이래선 안됩니다. 새문안 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라면, 조선 동포가 아니라 중국인이 전염병으로 쓰러지고 있었더라도 발벗고 나서서 전염병 시체가 즐비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도왔을 겁니다.
자신도 죽을 수 있었지만 당시 새문안 교회 성도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한 죽어가던 현실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전염병으로 고통당하는 중국인들을 향해 발을 동동구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라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