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
정초부터 웬 쓴 잔소리라고 하실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동안 느꼈던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몇 자 피력해 보고자 한다.

30년 이상 그림을 그려 온 나도 지체2급 장애인이다. 소아마비로 3살 때 양쪽 하지마비가 되어 목발에 의지해 힘들게 걸을 수 있을 정도이고, 휠체어를 사용할 때도 있다.
수 년전에 입시전문 미술학원도 10년 이상 운영했었고, 여러 곳에서 미술지도를 한 경험도 있다. 입시전문 미술학원에서는 이름 그대로 미술대학을 입학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무섭게 지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에 붙으면 학생 자신이 잘해서 합격한 것이고, 떨어지면 학원 탓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예비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일종의 과정으로 훈련의 성격이 강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훈련 과정을 겪은 학생들이 미술대학에 진학할 경우, 미술의 기초적인 뎃생이라던지 수채화, 유화등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학에 들어가 좀 더 심도 있는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유치원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의 경우와 비슷하다.
물론 반드시 미술대학 과정을 밟아야 훌륭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독학으로 공부를 하여 훌륭한 화가가 된 사람들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독학으로 공부를 하였던지, 미술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던지 중요한 것은 훌륭한 화가가 된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피나는 노력...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진부하게 느껴지는 단어일 수 있다.
화가가 되겠다고 캔버스에 물감만 하루 종일 바르고 있다고 노력한 것일까? 그것은 물감 낭비이고 재료낭비인 노동에 불과하다. 피아노 연습을 한다고 아무 생각없이 건반만 하루 종일 두드리고 있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선을 하나 긋더라도 내가 이 선을 왜 그엇으며 그 선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색을 한 번 칠하더라도 왜 이 색을 선택하였으며 이 색의 위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그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가 생전 처음 만났던 장애인 화가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었다. 간간이 필담을 섞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예술에 대한 강한 정열과 집념이었다. 그런 점이 그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한국장애인미술협회를 몇 몇 뜻있는 분들과 결성하여 초대사무국장과 그 후 임원을 맡으면서 장애인 작가들과 만나게 되었다. 만났던 많은 작가분들은 장애를 딛고 예술의 혼을 불사르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렇지만, 반면에 취미생활정도로 그림그리기를 하고 있는 분들이 미술협회에 가입을 하여 작가대접을 받고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여 씁쓸하였다.
그림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엄연히 있다. 프로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 다시 말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즐거워서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리고 덤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잘 그렸다는 칭찬을 받고 행복을 느끼면 그만이다. 하지만 프로 작가들은 고통으로 작품을 낳는다. 그들에게 일반사람들의 평은 중요치 않다.
아마추어의 그림은 일반사람들의 평을 받고, 프로의 작품은 전문가(프로작가, 평론가, 미학전공의 큐레이터등)의 평을 받는다. 일 년에 고작 몇 점의 작품만 끄적이고 작가인 척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런 분들은 비록 천재라도 옛 날 그림 그리는 사람이 지금보다 적었을 때, 작가 대접을 받았을 지 모르겠지만, 일년에도 엄청난 수의 화가 지망생이 배출되는 현재에는 어림도 없다. 작가인 척 명함을 만들어 돌리지 말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편이 훨씬 적절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그림 세계도 냉정한 것이 현실이다. 현대미술은 기초가 필요없다고 혹자는 주장하지만,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의 콩떡이다. 기초없이 세워지는 건물이 없듯이, 기초가 없는 그림작업은 언젠가 막다른 벽에 부딪힌다.
기초의 시작인 뎃생을 하는 이유는 물체를 잘 그리려는 목적보다 사물을 잘 보는 훈련인 것이다. 그림그리는 사람의 시각이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말도 그런 맥락이다. 뎃생과 더불어 화면의 컴포지션, 색채, 재료등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초만 충실하면 화가가 아니라 화공이 되기 쉽다. 여기에 사유능력도 함께 배양하여야 한다. 철학과 문학, 미학 서적을 비롯한 각종 서적을 많이 접해 사유의 폭을 넓혀야 좋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기초로 탄탄하게 자리잡았을 때,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찾아야 한다. 추상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이 탄탄한 기초위에서 출발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비장애인들도 힘들어서 많이 포기하는 작업을 장애인들이 하기에는 몇 배의 노력과 고통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뻔 한 일이다. 장애인들이 정규 미술교육을 받기는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금만 눈을 들어 찾고자 한다면, 좋은 서적과 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잘 구축되어있어 힘들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앉아서 전세계의 좋은 그림들을 마음껏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미학이나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잘 되어있어서 저명한 교수의 동영상 강의도 들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장애인 화가 지망생을 가르치려면 속상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기초가 전혀 안 되어있는 그림을 봐달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사유는 고사하고 노력한 흔적도 없다. 그냥 물감만 발라놓은 형상이다. 고칠 점을 찾아 말해주면,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은지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팔에 힘이 없어서... 허리에 힘을 줄 수 없어서... 눈이 아프고 오래 앉아있기 힘들어서... 등등
그림은 그림으로 평가되어진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어렵게 그렸다는 동정이나 이해심의 구걸은 통하지 않는다.
두 팔이 불편하여 입으로만으로도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지 않은가? 비장애인 작가들도 쉽게 해내지 못한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고통을 뛰어넘지 못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취미로 그려라. 프로근성을 가지고 그림이 아니면 죽겠다는 각오가 되어있으면 덤벼들어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많은 화가 지망 장애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물어 보면 장애를 입어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그림을 선택했다던지, 재활 수단으로 혹은 정서함양을 위해 그림을 택했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취미로 그림을 그릴 것을 권한다. 프로의 길은 정서함양과 같은 고상한 단어와는 무관하고, 거칠고 험난하다. 그 고통속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잠깐의 행복을 맛보고는 또 다른 고통을 안는 사람들이 프로들이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했더라도 그림이 자신의 소질과 체질에 맞고 그림과 싸워 이길 오기가 생긴다면 프로근성을 가지고 덤벼라. 프로는 작가대접을 안해준다고 서운해하거나 작가대접 받으려고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근성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하다보면 어느 덧 작가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작가가 되길 원하는 장애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 언급한 기초적인 토대를 튼튼히 숙지한 후에 자신의 장애 상황에 맞는 기법을 최대한 개발하라는 것이다.
손이 불편한 사람은 직선을 힘있게 똑바로 긋는 것이 힘들 것이다. 노력해서 안된다면 그 선을 자신만의 선으로 만들어보라.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지만 많은 선을 연습하고 연구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선이 완성되어있을 것이다.
뷔페나 자코메티의 독특한 선은 엄청난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선을 예로 들었지만, 중증장애인이 무거운 유화를 하는 것보다 아크릴이나 수채화를 하는 것이 편한 것 처럼 독특한 자신만의 재료를 연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법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누가 어떤 방법으로 독특한 세계를 만들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많이 사유하고,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그려라!
이것은 화가를 꿈꾸는 장애인에게 부탁드리는 말과 동시에 나 자신 스스로에게도 때리는 따끔한 채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