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22~40절
사람을 한문으로 보면 4가지(눈,코,입,귀)가 열려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람에는 또 느낌에너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통로인 오감(미각,시각,촉각,후각,청각)이 있다.
한가지라도 막히면 그것이 집착이 되어 사실을 사실대로 만나지 못한다.
삶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다면 바로 "여기(사실의 세계, 본질의 세계)'에 있다.
삶은 소유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가 되는 성취욕에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은 3차원의 욕심(성욕, 명예욕, 재물욕 등)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생각으로만 읽지 말고 오감을 열고 읽어야 한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줄과 줄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을 읽고 느껴봐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한다'라고 할 때에 묵상이 '생각'이라면
'관상'은 생각이 끝난 자리에서 느껴지는 세계이다.
@ 생각해 보기 - 오병이어의 이적을 일으킬 때 드렸던 감사기도(6장 11절)
@ 가버나움 - 예수님이 최초로 복음을 전한 동네, 번역하면 평화의 동네
장점이 아닌 약점을 통해서 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본다.
24절 - '가보니 없더라' 이렇게 끝날 수도 있다.
곧, 즉시, 예수를 찾으러 갔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 생각해 보기 - 장애를 은혜로 바꾸는 사람(찬양~ 약할 때 강함주시네)
키가 작은 삭개오(하늘에서 보면 키가 제일 큰 사람), 열 두 해 혈루병 앓은 여자
25절 - 질문에 대답도 없다. 왜냐하면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
26절 - 목적을 잃어버리고 수단에 얽메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향한 폐부를 찌르는 말씀이다.
27절 -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사명때문에 예수님께 온 것이 아니라 떡 구하러, 밥 먹으러, 이용해 먹으려고 왔다는 것이다.
28절~29절
예수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그러니까 교회에 와서 하나님 믿으면 하나님 일 다 한것이다.
이것은 너무 저급한 해석이다.
그러므로 내가 되어서 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일 속에 길과 진리와 생명이 있기에 그렇다. 예수 믿는 일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 되는 길이 어디 있는가?
내 달란트를 계발하여 또다른 이웃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내가 또 이웃이 되는 것이다.
30절 -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행하셔서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게 하려고 합니까?
쉽게 말하면 예수님이 하는 일이 뭐예요?
32~33절 - 너희들은 먹는 밥만 보이지?
이 세상에는 땅에 속한 밥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밥도 있다는 말이다.
즉, 사람은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땅의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사명으로 산다는 것이다.,
35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공식이다.
38~40절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다.
내 원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은총이다.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늘에서 왔다가 하늘로 가는 사람
그러므로 죽음은 장례식이 아니라 지구소풍을 끝내는 축제이다.
39절 -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철났다는 인간이란 누구인가
봄이 오면 봄을 살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사는 것이지
여름이 왔는데, '왜 왔지, 더워 죽겠는데, 봄이나 계속되지.' 하는 인간은 철부지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로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천국에 가야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있는 곳이 천국임을 아는 사람이 철난사람이다.
철난사람은 아무 걱정이 없다.
때를 알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