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와 같은 곳

글쓴이 : 활산 날짜 : 2013-08-19 (월) 10:09 조회 : 1326
 
 
10월 6일(화)~8일(목)
2박 3일동안 나는 생애에 처음으로 경험했던 아주 귀중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전거 뒤를 따라서 시속 20km를 넘지 않도록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 이었다.
 
실크로드의 광야의 길
일반적인 자동차의 속도는 시속 120km
 
자전거로
이러한 길을 이동한다는 것은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내 자동차를 추월해 가는 자동차의 속도를 생각해 보자.
그 자동차가 갑자기 추월을 하려고 하는데 왠,,,자전거,,,!!!
 
은혜가 아니었다면
결국 우리는 전쟁터에서 모두 패배 했을 것이다.
 
'알마타에서 우쉬토베까지'
자전거로 다녀왔다는 것은 너무 힘든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다.
 
앞으로는
자전거를 타는 문화가 있는 나라(선진국)에서나 자전거 여행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람을 배려하고
자전거 문화를 배려하는 그런 나라,,,
 
이번에 나는 '알마타에서 우쉬토베까지'
자건거 뒤를 따라 여행을 했다.
 
우쉬토베는 구,소련시절(1937년)
사할린(원동)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였기 때문이다.
 
영하 40도의 얼어붙은 동토의 땅을 맨손으로 파해치며
땅굴을 파서 살아남았던 흔적이 있던 땅 우쉬토베
 
죽은 자식의 시체는 기차 밖으로 버렸지만
후손들을 위해 가슴에 품고 왔던 씨앗은 버리지 않았던,,,그래서,,,소련땅에 처음으로 벼농사를 시작했던 땅 우쉬토베
 
카자흐스탄 우쉬토베는
1937년 구 소련으로부터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이 맨 처음 정착한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한번 "카자흐스탄 우쉬토베"에 대한 시를 묵상했다.
 
카자흐스탄 우쉬토베
(시인, 이병창)
 
나라를 잃으면 사람도
개가 된다고 했던가
어느날 갑자기 개처럼 끌려와
내던져진 고려인의 벌판
살아남기 위하여
오직 한목숨 부지하기 위하여
파 들어간 우쉬토베의 땅굴 앞에서
나는 망연하게 지평선만 바라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십여만의 생목숨이 죽었다는데
피묻은 역사의 현장에는
죽어서 말하는 비석들만 줄지어 있다.
까라딸 검은 강물처럼
타들어 간 가슴들을 오늘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나는 여기 비운의 땅에서
통곡의 벽 하나 갖지 못한 조국을 생각한다.
지금쯤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목청소리로
도배질 당할 조국을 생각한다.
일천구백삼십칠년 시월을 기억하라고
또다시 개처럼 끌려 살면 안 된다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고
우쉬토베 원혼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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