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문화는 생일잔치 문화라고 말을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1년간 돈을 벌어서 생일잔치를 한다고 표현할 정도이니까
이런 문화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생일은 없다" 라고 말을 했으니
처음에는 정신나간 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렇게 설교했으니 말이다.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날을 생일로만 기억하고 산다면
짐승과 다를것이 무엇일까?
어느날
내가 하늘과 연결된 영적존재임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
내 육체가 지구에 온 날을 생일로 기억해 본적이 없고
하늘이 영광이 그리고 아내의 생일까지도
everyday is birthday
매일 매일의 생일로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예외의 날이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부터 빙판길을 마다하지 않고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딸자식의 생일을 기억해서 찾아오신 고려인 할머니(밀라 엄마)
우리는 밀라이모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위해
결핵병원의 입원실을 밤 9시가 넘은시간에 찾아갔다.
병원을 찾아온 방문객은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또한 오후 6시가 넘으면
환자를 면회할 수 없음이 병원의 규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상황을 어기면서까지
밀라이모의 생일잔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위해
생일케익에 촛불 하나를 꽂고 축하노래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함께 했다.
어두운 밤에 빛을 밝히는 가로등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 축하 멧세지를 남기고
병원밖에 나와 눈위에 서서 하늘이가 준비한 클라리넷 연주로 밀라이모 뿐 아니라
결핵병원에 입원한 모든 환자들에게
생일 축하노래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양을 연주해 주었다.
한국에서 새벽송을 했던 느낌이라고 말을 하면서
우리들은 병원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