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KBS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날을 생각해 보니
벌써 KBS 한민족리포트(우즈벡 농아추국팀 이야기)가 방송된지도
1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이 변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다.
흰머리가 좀 생겼고, 배가 좀 나온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해서
전화해 주신 작가분께
이렇게 답변을 해 주었다.
10년전 KBS 한민족리포트의 내용과 지금의 삶이 별로 차이가 없으니
그 내용을 보라고 했다.
그런데 다시 전화를 해 왔다.
그리고 아래의 협조요청서를 보내왔다.
저희들이 준비하는 프로그램은 5월 11일부터 kbs 2tv 에서 방영 예정인
'해외 봉사자 사례 소개 방송'(가칭 지구인: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 입니다.
간단히 저희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리자면,
1. 방송일시 :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11시30분 (30분)
2. 형식 : 휴먼다큐멘터리
3. 내용 : 재외 동포중 현지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및 단체
4. 제작사 : 상상미디어(외주 제작사)
우선 프로그램 취지는 올해 G20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등 높아진 한국인의 위상에 맞춰
해외 각지에서 현지인들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랑스런 한국인의 모습을 시청자에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인을 대표하는 해외 동포들의 모습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방송에 대한 글
안녕하세요 이민교 선생님 전화드린 조선혜 작가입니다.
몇가지 질문이 있어 이렇게 메일 남기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오늘(4월 8일) 중으로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변은 길~게 길~게 부탁드려요 ^^
Q.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농아축구 감독을 하시기 이전에 국내에서도 꽤 많은 봉사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봉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살았던 저희 집 근처에 고아원이 있었지요(전라북도 남원시 죽항동)
그리고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장애인 친구를 보면 마음이 무거웠었구요.
이것이 자연스럽게 누적이 되어 지금의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Q. 다른 많은 봉사도 있는데 왜 농아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게 된건지?
장애학적으로 장애인을 구분할 때에 4종류(제체장애, 정신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로 나누곤 하지요.
그런데 농아들은 2중장애를 가졌다고 말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농아들은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애인 쪽에서도, 비장애인 쪽에도 설 수가 없는 삶의 갭이 큰 장애파트가 농아이지요
이런 농아들에게 축구를 통해 삶의 진수를 알려 주고 싶어서 축구를 시작했답니다.
Q. 우즈베키스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초청을 받아 오게 됐다 했는데
애초에 우즈베키스탄엔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질문이 사실과 다르네요. 카자흐스탄에서 초청을 해서 온 것이 아니거든요.)
구. 소련이 무너지고 1993년 5월에 러시아(모스크바, 레닌그라드)에 왔다가 모스크바 아르밧 거리에서
저와 외모가 비슷한 젊은 청년을 만났답니다.
길거리 화가로 일을 했던 그 청년은 결핵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고
아마도 제 생각에 젊은 청년이 고려인이라는 것 때문에 돕고 싶은 마음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청년을 돕고 싶은 마음에 고향인 우즈베키스탄까지 가게 되었답니다.
Q. 선생님이 계신 곳은 카자흐스탄의 어느 지역인지?
카자흐스탄 알마티(옛 수도)에 있지요
지금의 수도는 아스타나입니다.
Q. 카자흐스탄엔 가족들도 다 함께 오셨는지?
사모님께서 약사라고 알고 있는데 여전히 봉사활동에 도움을 많이 주시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직 학생인가요?^^
제 아내는 한국에서 9년간 약국을 운영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약사가 아니라 밥사(밥을 약처럼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답니다.
아이들은 2명이 있고 현재 12학년, 10학년에 다니고 있답니다.
이하늘(1992년생, 여자) 이영광(1994년생, 남자) - 카자흐스탄 텐샨학교 학생이지요
Q. 경기가 없을 때에도 많은 농아 선수들을 돌보고 월급도 주신다고 하던데 봉사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충당을 하시는지?
한국에 있는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구요
그렇지만 장애인들에는 “일속에 나타난 하나님. 땀속에 찾아온 하나님” 이라는 정신으로 함께 일을 하면서 작은 부분이지만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콩나물사역, 두부사역, 천냥하우스사역, 뻥튀기사역)
Q. 요즘도 '춤추는 콩나물'과 '행복한 두부'를 만들고 있는지? 언제부터 시작하신건지? 농아 아이들과 이민교 선생님이 함께 만드시는 건지? 판매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 지나요?
약 4년 전부터 시작되었구요
처음에는 농아들이 만들고 제가 판매를 하곤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판매까지도 농아들이 하고 있답니다.
Q. 농아 축구감독 활동 이외에도 손짓사랑음악회와 손짓사랑회보를 제작하시던데
그 두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언제부터 시작하시게 되신건지 그리고 회보제작이나 음악회 계획이 있다면 언제인지도~^^
‘손짓사랑 음악회’는 세계 장애인의 날(12월 3일)을 기점으로 3년전부터 매년 하고 있구요
‘손짓사랑’ 장애인 회지는 2009년 1월부터 계간지로 1년에 4회를 출판하고 있고 현재 2010년 '손짓사랑' 봄호가 출판되어 있지요
Q.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힘든 것이 있었을까? 생각해 볼께요
Q.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보람되셨던 적이 있다면?
저의 최대 관심은 사람의 변화에 있답니다.
농아들이 행복한 삶의 중심에서 농아로 태어남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하는 고백과 더불어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보람이라면 보람이겠지요
Q. 같이 축구를 한 아이들 중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면? 이유는?
선천적인 농아인인데 어느 누구보다 축구를 잘 하는 친구가 있었지요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태어난 농아인 친구이기에 제가 한국의 프로팀에 입단을 시켜보려고 노력해 봤는데 농아라는 것 때문에 테스트도 받아보지 못했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Q. 앞으로의 계획 내지는 바라는 점이 있다면?
2012년에 농아인 아시안게임이 한국에서 있지요.
먼저 아시안게임에서 3위안에 입상하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후에
2013년 아테네 농아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꿈꾸고 있답니다.
추가로 방송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겠다 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가감없이 이야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너무 답달기 식으로 답변을 했는지요.
혹시 나머지 궁금하신 내용이 있다면 카자흐스탄 농아인 축구팀 카페를 참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중앙아시아 땅에서의 14년의 삶을 종이 몇장에 옮겨보려고 하니까
왠지 어색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