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은혜로 이슬람 땅에서 농아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감당한지
15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세례(침례)를 거행할 수 있음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함으로 아래와 같이 세례와 성만찬을 준비해 봅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나의 나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 할 뿐입니다.
바라기는
금번에 진행되어진 성만찬(예수가 내 안에) / 세례(내가 예수 안에)를 통해
우리 농아들도 주님께 쓰임 받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성령님이 일으키실 성령의 파도를 기다리면서
우즈베키스탄 국경도시 사라가치에서
비 바람이 부는 날에
성만찬(예수가 내 안에)
구약의 모든 의식과 규례들은 실상이신 예수가 오심으로 모두가 사라졌고
성만찬과 세례만 남았습니다.
성만찬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잡수시는 장소에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고 명령하셨습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너희들은 모두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 사실을 만민 앞에 공표하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하신 유언이요,
세례는 승천하시는 날에 하신 유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의식 가운데 이 성만찬과 세례는 최고의 의식인 것입니다.
유언은 그 사람이 죽으면 효력을 발생하듯 예수님이 떠나시자 그 유언은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의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만찬의 유례>는 무교병이라는 누룩 없는 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룩 없는 떡, 즉 무교병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광야에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 먹이신 떡이 “만나”인데, 만나의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주신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6:35) 이것이 성만찬의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의 처음 시작은 출17:2~6절에서 유래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 반석을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물이 나올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전10: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만찬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이라고 하는 의미는 기억한다(remember)라는 뜻으로 과거를 되새김으로 현재를 새롭게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능력있는 사람일까요.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얼마만큼 알고 있고, 깨닫고 있고, 믿고 있고,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그것이 믿음의 분량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만찬>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과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내가 다시한번 기억하고 결단하는 그래서 나의 삶에 주님의 임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함으로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 죄 때문에 죽으신 그분, 내 죄 때문에 피와 물을 쏟아 버리신 그분,
그리고 나를 영생케 하려고 내 몸을 받아 먹으라고 하신 그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영생하신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의 흘리신 피는 우리에게 속죄하는 보혈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
성만찬의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