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태어난 것을 미안해하던 청년이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부처의 윤회설을 포교하던 중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그 청년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 농아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특히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농아인 축구팀을 창단, 그들에게 축구를 통한 새 삶을 선물했다. 이제 같은 민족인 북한 농아들을 위한 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복음에 빚진 사람 GP선교회 이민교 선교사다.
불교 신자에서 예수님의 복음으로 무장한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
소록도에서 부처님을 믿도록 한센인들을 포교하던 이민교 선교사는 법당에서 기적적으로 예수를 영접했다. 염불을 외던 중 소록도 화장터 장례식 때마다 수 도 없이 들었던 찬송가의 가사(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결국 방언까지 터졌고 이 선교사의 삶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었다. 그 후 신학을 공부하던 1993년 여름. 단기선교로 떠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고려인을 만난 것을 계기로 1997년 봄에는 가족들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에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러 떠났다.
예수를 믿지 않았던 대학생 시절, 처음으로 원광대학교에 손짓사랑회(수화동아리)를 만들었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농아인 선교를 시작하게 하셨다. “이슬람은 장애인을 ‘알라가 버린 자들’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종교에 세뇌당한 이슬람 문화의 장애인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작품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회복된 장애인들이 또 다른 장애인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드러나게 복음을 전할 수 없어서 사랑의 헌신으로 농아들을 도왔다. 약사였던 아내는 농아들에게 밥을 해서 먹이는 ‘밥사’가 되었고, 이 선교사는 농아인 축구팀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약 3년후에 우즈베키스탄 농아축구팀은 2000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까지 따냈다.
그러다 위기가 닥쳤다. 목사의 신분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알려져 추방을 당하게 된 것이다. ‘임신해서 배가 아파 낳은 자식’과도 같았던 우즈베키스탄 농아들을 두고 추방당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카자흐스탄 농아들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2005년에 시작하게 하셨다. 그 후 카자흐스탄 농아축구팀은 2008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딸 정도로 이 선교사의 열정은 훨훨 타올랐다.
“축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주님의 은혜로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지원도 없어 자비량으로 대회에 출전하곤 했습니다. 축구가 농아들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과 그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카자흐스탄에서는 농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터교회를 만들었다. 콩나물, 두부, 뻥튀기를 만들어 팔며 농아들이 스스로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 선교사는 이런 일터교회가 장애인뿐 아니라 현지교회의 자립을 위해서도 좋은 도구로 쓰임 받는 모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맨 처음 통일의 문 열게 하고파”
이렇게 이슬람 농아들을 위한 사역에 몰두하던 이민교 선교사가 2년 전 가깝고도 먼 나라에 눈을 떴다. 평양에서 열린 세계장애인의 날(2012년 12월 3일) 행사장에서였다. 그 때 만난 북한 농아들은 이 선교사를 평양호텔 숙소에서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북한 농아들을 위한 사역에 뛰어들게 하신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내 조국, 대한민국이, 남과 북이 소통되지 않는, 그래서 혹시 농아인국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 그어진 38선(휴전선)이 성경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와 같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허리신경이 마비된 중풍병자와 같은 한반도에 남북한의 장애인들이 작지만 통일의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남북 단일 탁구팀으로 유명했던 현정화, 리분희. 그 주인공 리분희 서기장을 중심으로 북한 장애인 스포츠가 활력을 얻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농아축구팀을 훌륭하게 이끈 이민교 선교사는 북한 조선장애자보호련맹 체육위원회와 북한 농아축구팀 창단을 합의(2013년 10월 18일)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3월 말 북한에 다시 들어가 북한농아축구팀 창단에 관한 제반사항들을 결정할 예정이다.
구. 소련권에서 20여년간 잔뼈가 굵은 이 선교사도 북한의 사역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루하루 경험으로 살아가는 날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큰 꿈을 꾸고 있다. 당장 올해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 장애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내년(2015년 8월 15일)에는 남북한 농아인 축구팀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친선경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를 위해 월 1만원 후원자 500명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장애인들을 많이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장애인 선교는 하나님나라의 본질사역임을 고백해 봅니다.“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통일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을 통해 한반도에 통일한국 선교한국으로 이어지는 평화통일이 하루속히 오길 바라며 행동하는 통일연습(통일금식. 통일예배. 통일성경. 통일저금통. 통일선교사)으로 통일을 준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