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예수를 전하다가 잘 죽어 보겠다고 부르신 곳을 향해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선교사로 20여년이 지난 지금... 나를 봅니다.
“교만”과 “허영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속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나라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농아들을 훈련시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 날
2000년도 5월, 타쉬켄트 공항에서
방송국의 인터뷰와 각종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던 그 날
이(이 세상에 태어나) 민(민중의 지도자로서) 교(교만한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름의 삼행시를 붙잡고 결단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교만” 뿐 아니라 “허영심” 까지
내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려 봅니다.
“교만”이 자화자찬을 넘어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내가 칭찬받는 자기중심적 “허영심”이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민교 감독의 내용을 4부작으로 찍자고
KBS 인간극장에서 몇 차례 연락을 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 책을 읽고
이 내용을 연극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극단에서 연락이 옵니다.
오늘 극단 대표를 만났습니다.
이 시대에 소록도 영성이 살아 숨 쉬는
나병환자들이 통일을 준비하는
그래서
허리신경이 마비된 38년 된 병자와 같은 장애인 국가를
소록도 나병환자들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내용으로
연극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996년도에 만들었던 기도 책갈피를 보고, 또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