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선교사로 출발하면서
“생명보다 사명을 더 귀중하게” 라는 제목으로 만들었던 기도책갈피를 기억해 본다.
‘오늘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날, 오늘은 성막을 통해 영적인 종합진단을 받는 날’
삶의 현장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번제단으로 표현된 예수의 피가 있는가?
물두멍의 역할로 상징된 변하지 않는 말씀이 있는가?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떡상의 예물이 있는가?
불빛하나 없는 성소에 어두움을 밝히는 등잔이 있는가?
하나님을 일하게 하는 향로의 기도가 있는가?
말씀을 상징하는 십계명의 돌판이 있는가?
생명의 양식으로 이 땅에 오신 예표된, 만나의 돌항아리가 있는가?
성령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는가?
날마다 피 터지는 삶의 현장에서
성소와 지성소에 나타난 성전의 기구들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점검하고
지성소의 영광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가 지금 나에게 있는가?
결국, 선교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대위임령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선교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실 처소가 되는 계시록 21~22장에
마침내 하나님의 심장박동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마 28:19~20 선교에서, 창 1:1 의 선교로
넘어가는 선교를 아래와 같이 적용해 본다.
태초의 하나님은 시간이요 깬사람이다.
천지의 하나님은 공간이요 된사람이다.
창조의 하나님은 인간이요 산사람이다.
모름지기 "삶은 관계"이기에
시간, 공간, 인간(사이)에 나타나는 관계들을 어떻게 하느냐가 "삶의 능력"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마28:19~20의 사역을 잠시 내려놓고
창1:1의 말씀으로 zero base 에서 오늘의 선교를 시작해 본다.
세상 전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될 그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