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농아축구팀 창단, 통일향해 시축

글쓴이 : 손짓사랑 날짜 : 2014-02-15 (토) 11:11 조회 : 2661
 
 


2012년 12월 3일,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의 날 기념식. 카자흐스탄 농아인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평양을 방문한 이민교(51) 선교사는 그때 북한 장애인들을 처음 목격했다. 시각·청각·지체 장애인들이었다.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한반도가 장애인처럼 느껴졌다. ‘허리신경이 마비된 중풍병자, 38선을 사이에 두고 소통이 안 되는 농아인 국가처럼 인식됐다.

이 환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 한가운데 무릎 꿇은 그는 하나님과 씨름했던 야곱처럼 간절히 기도했다.

그로부터 1년2개월 후인 지난 7일, 이 선교사는 서울 서초구 더케이서울호텔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씨름 결과’를 전격 공개했다.

그는 “북한에 농아인축구팀을 구성하기로 했다”며 “다음달 선수 선발을 위해 평양에 간다”고 말했다.

이 선교사는 지난해 10월 18일 평양에서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장애인체육협회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 최초의 농아인축구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3년 동안 농아인축구팀을 맡기로 했다. 사실상 감독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선교사는 농아인 축구 전문가다. 축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장애인 선교의 일환으로 축구를 도구로 택했다. 원래 원불교 교무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소록도 봉사를 갔다가 ‘예수 믿으라’는 한센인들의 권유에 변화됐다. 목탁 치며 염불을 하다가 방언까지 터진 그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1997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농아인들을 모아 축구를 하면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3년 만에 농아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30여명의 선수를 길러냈다. 2000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까지 따는 실력을 보여줬다.

이슬람권 국가에서 장애인은 버림받은 존재였다. 청각장애로 말을 하지 못하던 현지 농아인들은 절망적 사회 환경에 수화를 하던 손마저 굳어 있었다. 이 선교사는 그 손을 잡아 일으켰고 뛰게 했다. 희망의 손길에 농아인들은 살아났고 공을 차며 그라운드를 달렸다. 농아인 아시안게임 4강 기적은 그렇게 이뤄졌다.

이 선교사에게 우즈벡 농아인은 영적 자녀였다. 선교사라는 이유로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 추방당하고 결국 2004년 정든 사역지를 떠나야 했지만 지금도 그들을 잊을 수 없다. 함께 땀 흘리고 울며 웃었던 그들이었다. 우즈벡 건국 이래 처음으로 농아인축구팀을 만들어 훈련시켰고 메달을 땄고 국가로부터 연금까지 받게 했던 그였다. 이 선교사는 아직도 우즈벡 ‘자녀’들에게 자신의 선교 후원비를 쪼개 매월 500달러씩 송금한다.

2005년 카자흐스탄으로 임지를 옮긴 그는 역시 농아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거기서도 사랑과 열정을 쏟아 2008년 농아인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는 축구 하나로 만족하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농아인을 위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던 차에 북한의 장애인을 만난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싶었다. 메달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38년간 중풍을 앓던 베데스다 연못 병자에게 했던 예수처럼 말하고 싶었다. “일어나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요 5:8)

이 선교사는 카자흐스탄 영주권자로서 북한 방문 등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그는 이후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과 접촉하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농아인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마침 북한에서도 농아인 체육에 관심을 보였다. 카자흐스탄 영주권자라는 신분과 외국에서 농아인 축구팀을 운영한 그의 경력이 작용했다.

지난해 7월 열린 동아시아 축구대회는 그의 소망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그달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남북한 여자팀이 경기를 펼쳤다. 이 선교사는 90분 동안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후반 35분 한국의 공격수 지소연 선수가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지자 북한팀 김남희 선수가 가장 먼저 다가가 경련 부위를 매만졌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번엔 양측 감독이 손을 맞잡고 등을 두드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의 윤덕여 감독과 북한의 김광민 감독은 90년 남북 통일축구에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함께 경기장을 누볐다. 그들의 웃음에 이 선교사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경기를 보면서 ‘중풍병자’ 한반도가 건강한 나라, 소통이 되는 나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농아인 축구가 통일의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조선장애자보호연맹 관계자들을 만나 농아인 축구팀 창설에 합의한 것이다. 조선장애자보호연맹 서기장은 전 북한 탁구 대표이자 현정화 감독과 남북 단일팀 멤버였던 리분희였다. 이 선교사는 당시 전 국가대표 이영표 선수가 기증한 축구공 100개를 가져갔다. 평양 인근 8개 농아학교에 10개씩 선물했다.

북한의 장애인 체육은 최근 국제대회에 연이어 참가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2년 런던장애인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북한팀은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장애청소년경기대회에서 수영, 탁구 부문에서 은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이 선교사는 지난 6일부터 국제사랑의봉사단과 함께 북한 농아인 축구팀 훈련 지원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여기서 얻은 모금액은 2016년 대만에서 열리는 농아인 아시안게임에 북한 농아인 축구팀이 출전할 때까지 돕게 된다. 월 1만원 후원자 500명이 목표다.

“그거 아세요.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해방됐어요. 내년이면 한반도 분단 70년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2015년 광복절에 남북한 농아인축구대회를 서울과 평양에서 개최했으면 좋겠어요. 농아인들이 축구로 교류하면서 통일의 물꼬를 튼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그는 요즘 국내 교회를 순회하며 통일을 외치고 있다. 이 선교사는 “통일은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통일을 위한 금식과 예배, 남북한 성경통일, 통일 저금통 마련, 통일 선교사 양성이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장애인들의 표정은 착하고 순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농아인 수화가 다른 게 많다고 덧붙였다. 남북한 통일 수화책자 발간. 그에게 통일 연습 하나가 더 늘었다(문의 : 국제사랑의봉사단 031-704-3914).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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