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천자이신 김요석목사님을 소개합니다.

글쓴이 : 손짓사랑 날짜 : 2015-07-19 (일) 01:15 조회 : 433
 
사랑의 실천자이신 김요석목사님을 소개합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에서 15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지만 영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 마을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글은 영호를 방문하였다가 그들의 삶에 감동한 김요석 목사님의 독일 친구인
클라우드-디터 그래스가 1991년에 독일에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0년간 영호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아는 분이 없는 상태이기에
부득이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 티벳에서 나병환자를 돌보며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은 영호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주민이 250명 정도 됩니다.
영호는 아주 특이한 곳입니다. 이곳을 설명하려면 먼저 다른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 같군요.
한국에는 아직도 나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있는데,
나병이 양성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소록도라는 섬에 강제 수용됩니다.
소록도에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 있지요.
그곳에서 병이 호전되어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뀐 사람들은 육지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두 마을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그 중 한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으레 손부터 감춥니다.
비틀려 있거나 아예 끊어져 나간 손가락이 남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나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들의 약한 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김요석

저는 제 친구인 김요석 목사의 교회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해준 것과 우리가 체험한 것 가운데 몇 가지를 두 사람이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나환자 정착촌에서 함께 살면서 겪은 김요석 목사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김광운 화백은 몇몇 장면을 삽화로 그려 주셨습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클라우스-디터 그래스(Klaus-Dieter Gress)  




1.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만남  

오랜만에 고향인 한국에 돌아왔다.
독일에서 공부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한학기 동안 신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열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님에 관한 이론적인 질문에는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들은 여러 가지를 묻고 싶어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신학 이론으로는
그 문제들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목사님이 없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배운 신학을 그곳에서 늘 적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신학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을 친히 만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체험보다는 교리가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이것이 내 얼굴에 씌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나이 많으신 목사님 한 분이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알고 싶으시다면 교수직에 머물러 있지만 말고 차라리 무슨 일을 해보십시오!"
그러면서 목사님은 한 가지 일을 제안하셨다.
"남부 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그곳에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교수직이라는 좋은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목사님은 내게 그 마을의 주소를 건네 주셨다.
어느 토요일,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그 마을을 향해 떠났다.

긴 여행이었다.
영호에 도착하자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두서너 사람이 나를 마중나왔다.
그 사람들의 얼굴 생김이 특이한 것 같았지만 가로등 불빛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목사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 사람들은 별말 없이 어떤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것이 내 방인가? 방에는 가구가 없었을 뿐 아니라 벽은 더러웠으며
작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밤을 지낼 만한 이불 한 채 깔려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로 잠들어 버렸다.

주일 아침 8시 30분이 되자 교회 종소리가 작게 두 번 울렸다.
오래된 교회당에 가보니 아이들이 스무 명 가량 모여 있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서 어린이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첫줄에 앉아 있는 꼬마가 계속 콧물을 훌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거슬렸다.
"얘야, 이리 와 봐. 내가 코 닦아줄게!"
코를 닦아주고 나서 다시 예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 번에는 다른 사내아이 하나가 코를 훌쩍였다. 못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소리였다.
결국 나는 스무 명의 코를 모두 닦아주어야 했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삐죽삐죽 웃었다. 첫 어린이예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대예배를 기다렸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강대상 앞에 섰다.
몇몇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교회당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내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교회 마루바닥 맨 앞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눈길이 그 할머니에게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이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할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멍 다섯 개뿐이었다.
눈도, 코도, 입술도 없었다. 양손조차 다 끊어져 나가고 없었다. 내가 나환자촌에 왔긴 왔구나!
예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망치질하듯 나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예배 후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일부러 천천히 설교원고를 정돈하였다.
내가 늑장부리는 동안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마침내 교회 문을 닫으려고 강대상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 없는 할머니가 고개를 드셨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이 없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이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나는 할머니의 손위에 내 손을 그냥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느낌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내 손을 잡고 아예 놓아주지 않았다.
"할머니, 혹시 어디가 편찮으세요?"
나는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는 흉한 얼굴로 웃어 보이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목사님, 전 열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건강한 손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제 손을 잡아 주시니 너무 기뻐서......"
나는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손가락이 다 끊어져 나가고 없는 이 할머니의 뭉툭한 손 끄트머리에서 하나님은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시기 위해서. 나는 누군가와 악수하듯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느꼈다. 나의 소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의 가혹한 운명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으십니까?"
"어떻게 제가 감히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오히려 감사드려야지요.
하나님은 아픔 가운데서 제게 복을 주셨는걸요."
"복을 주셨다구요?"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럼요. 예전에는 저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에서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나를 잊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지요. 하늘나라에 갈 소망도 주시구요.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나의 건강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둥병자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가혹한 운명  

열여덟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는데 살갗에 이상한 반점이 생긴 거예요.
햇볕에 타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요.
그런데 군데군데 허연 부분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름이 차더군요.
어머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더니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문둥병'이라는 말이 제 귀를 때렸어요.
저는 제 방으로 뛰어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많이 울었지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저를 꼭 안아주시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죽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얘야, 내 말을 좀 들어보거라. 에미가 도와주마.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겨야 한다.
아무도 널 보지 못하게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널 섬으로 보내버릴게다.
하지만 에미는 널 잃고 살 수 없다."
그때부터 저는 방안에서만 살았지요. 어머니만 이따금씩 돌보아 주셨어요.
밤에는 마당에 데려다 주시기도 했지요. 그렇게 저는 짐승처럼 갇혀 지냈습니다.
"어머니, 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정말 괴롭고 무서워요."
하지만 어머니도 그 답을 아실 리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어요.

어느 날 저녁, 선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였어요.
손에는 낫을 움켜쥐고....... 저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습니다.'정말 아버지가 날 죽이실까?'
아버지는 거기 서서 자신과 싸우며 망설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어요. 아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 버리셨습니다.
바로 그날 밤, 아버지는 쌀과자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가지고 제 방에 들어오셨어요.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제가 하나씩 집어먹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아버지는 한숨을 깊이 내쉬셨어요.
"네 병 때문에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 나버렸다.
네가 우리 집에서 사는 한 우리 식구는 살 수가 없어. 동네 사람들이 우릴 쫓아내 버릴게다.
네 동생들은 이제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용삼이 색시네에서는 파혼하자고 하는구나.
차라리 내 손으로 널 죽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이 애비 심정을 알겠느냐?"
저는 솟구치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 넌 이 집에 살 수 없는게야."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한 번도 돌아보시지 않고 나가 버리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차마 아버지 입으로 자살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겠지요.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했어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집을 몰래 빠져 나와 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미리 와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엿습니다.
"넌 내 딸이야. 내 눈앞에서 널 죽일 순 없다. 자, 이 쌀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거라.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면 혹시 고쳐주실지도 모르잖느냐? 그럼 너는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게고."
어머니가 절 꼭 안아 주셨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따뜻하게 절 감싸주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신 쌀자루를 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그 날 이후 한번도 저희 식구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산 속을 돌아다녔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가 산신령을 기다렸지만 허사였어요.
저를 도와주려고 나타난 것이라고는 허깨비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 저는 산에서 내려와 버렸어요. 그리고 어느 농가에 밥 한바가지를 구걸했어요.
나는 거지처럼 밥을 동냥하는데, 산 속에 두고 온 쌀자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신령이 벌써 다 먹어 버렸을까, 아니면 남아 있을까? 저는 엉터리 산신령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잡혀서 소록도에 가게 되었지요.

소록도에서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거기 있는 문둥병자들은 날 한 가족처럼 맞아 주었어요.
우리는 가족을 대신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잃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와 언니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신령과 우상을 믿는 대신 하나님 한 분만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달랐어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아드님은 문둥병을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지요.
저는 이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 문둥병은 제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 되었지요. 친부모와 형제도 절 거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은 저를 '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 형제와 자매들도 얻었지요. 제게는 장차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할 소망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3.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평화를 위한 굶주림  

어느새 겨울이 시작되었고 눈이 많이 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날씨였다.
어느 날 아침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집에 가보니, 꼬마 다섯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내가 물었지만 아이들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기만 했다.
마침내 그 중에서 가장 큰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엄마 좀 찾아 주세요.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무슨 일로?"
"할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요."
나는 아이들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할아버님, 애들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습니까?"
"그년이 아주 못된 년이어요."
노인은 욕을 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며느리의 잘못이었다.
"엄마는 곧 집에 돌아오실거야."

일단 아이들을 달래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집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여러 가지로 내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애들 어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애기들 엄마가 잘 도망가부렀어요. 그 노인네가 자기 며느리 징허게 못살게 했당게요.
맨날 며느리 욕이나 허고 돌아댕기는디 그 정도 참은 것도 다행이지요."
"......시아버님이 잘못하시긴 잘못하셨군요."

나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머리에는 온통 이 집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의 태도에 다 일리가 있었지만, 그 사이에 끼인 아이들은 울면서 지내야 했다.
아이들로서는 어른들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은 모두 주일마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화평에 대해
충분히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제야 나는 이 일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바로 내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죄를 회개하며 금식하기로 결심했다.

금식이 닷새 째로 접어든 날, 차씨 할아버지가 내 금식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목사님, 저 때문에 금식하시는가요?"
할아버지는 나를 책망했다.
"아닙니다. 할아버님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금식하는 거예요.
할아버님도 옳고, 며느님에게도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울면서 배고파하는 것은 제 탓입니다.
제가 평화와 화해에 대해 충분히 설교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금식하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돌아가셨다.

금식한 지 여드레가 지나자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할아버지는 나를 찾아와 고백하셨다.
"목사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식구들하고 며느리한테 너무 심했는갑네요. 인자 어째야 쓴당가요?"
"할아버님, 할아버님은 이미 가장 선한 길로 발을 디디신 겁니다. 저와 함께 기도하시지요."
나는 차씨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때 밖에서 아이들의 환성이 들려 왔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곧바로 며느리를 맞아들이셨다.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며느리가 먼저 말했다.
"아니다, 인자 다 잘 될 것이다. 내 맘이 달라져야제."
이제 아무도 상대방에게 잘못을 넘기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이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내 배를 슬쩍 만져보았다. 배가 쑥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선한 목적을 위한 굶주림, 평화를 위한 굶주림이었다.



4.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가장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웃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집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나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화가 나도 꾹 참았다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옆집 그 인간은 해도 정말 너무 하지 뭡니까?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목사님은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뭔가 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씩씩거렸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는 일이 급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양씨는 깊이 숨을 몰아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하지 뭡니까!"
"도대체 옆집 분이 원하는 게 뭔데요?"
"글세,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양씨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양씨는 씩씩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겁니다."
내 말이 초신자 양씨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양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돌아갔다.

양씨는 정말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양씨가 미친 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양씨를 비웃었지만, 그 중에는 양씨의 태도를 보고 사뭇 진지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그것은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가던 어느 가을날 밤, 양씨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밤 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에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분했습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한 짓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 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처음 생각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고 싶었지요.
하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이겼지요? 그렇지요? 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라니,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정말 제가 잃은 것보다도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씨의 얼굴은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양씨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는 올 때와는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맥빠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양씨는 또 한번 신이 나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말씀이 또 맞았어요!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돼지 아흔 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지 뭡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돼지 전부 자네 껄세. 내가 자네 때문에 지난밤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다 빠개지는 것 같아.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 여덟 마리씩 다 합해서 아흔 마리 전부 데려왔으니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양씨는 예기치 않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뛰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별안간에 이렇게 많은 돼지를 되돌려 받은 것도 굉장하지만,
지금까지 옆집에서 그놈들 전부를 먹인 먹이를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좋아라 하던 양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을 전체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5.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참사랑이란  

문둥병은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쉰여섯 되신 그 아주머니에게도 문둥병이 재발했다.
몸과 얼굴이 부어오르고 양쪽 눈과 콧구멍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예 그 집에 발길을 끊어버렸고,
나이 지긋한 교회 어른 한 분은 그 아주머니를 소록도로 다시 보내고자까지 했다.
게다가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웃 동네까지 퍼져나갔다.
심한 불안과 절망에 빠진 아주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약을 먹어버렸다.
차라리 죽어서라도 문둥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위만 상해서 이제는 제대로 먹거나 마실 수도 없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갔다.
내가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는 아무런 기력 없이 누워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고는 간곡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제발 저를 다시 소록도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두 번 다시 소록도에서 문둥병자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럼요. 하지만 여기 그대로 계시려면 건강을 빨리 되찾으셔야 합니다.
아무 거라도 좀 잡수어 보세요!"

"먹을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엌을 내다보니 아궁이 위에 생선찌개가 담긴 냄비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할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병에 옮을 것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숟가락을 쓰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나는 생선찌개를 가득 떠올린 숟가락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맛 좀 보세요. 아주 맛있는데요!"

아주머니는 내가 건넨 국물을 꿀꺽 삼켰다.

'아주머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드실 텐데...... 내가 함께 있으면 어떨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본 다음,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냄비가 텅 빌 때까지
아주머니와 함께 숟가락 하나로 번갈아가며 찌개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송씨 아주머니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니 온통 고름투성이어서 아주 끔찍해 보였다.
나는 수건으로 고름을 깨끗이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고름은 다시 흘러나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 누런 액체를 비추었다. 고름이 마치 금처럼 반짝였다.

"자매님, 자매님 얼굴에 금이 정말 많기도 하네요!"

나는 크게 소리내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주머니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동안 아주머니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문둥병자였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게 잔잔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아주머니의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 입맞춤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참사랑이란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그분과 똑같이 문둥병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고 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신 것이다.



6.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지체 높은 사람의 방문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에 군수가 나를 찾아왔다.
군수처럼 지체 높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온 적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 목사님이십니까? 지금에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은 우리 도지사 사모님께서 목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하셔서 말입니다.
내일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지체 높은 분이 어디에서 내 말을 들었을까?

"혹시 다른 사람과 저를 혼동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좀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런데 군수는 영호에 살고 있는 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급한 환자를 심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군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낼 모레로 연기할 수 없을까요? 그날은 시간을 낼 수 있겠는데요."

군수는 아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군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나보다.

"음 목사님이 정 그러시다면 목사님의 대답을 그대로 전하지요."

다음날 아침 군수가 또 찾아왔다.

"내일 오후 두 시가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오시겠답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마을 길에
무언가 덜거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는 국도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르지 못한 들길을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저만치 한 무리의 일꾼들이 트럭과 불도져를 몰고 마을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 높은 사람이 방문할 들길에 자갈을 깔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 였다.

약속한 날 점심시간에 군수와 면장과 경찰서장이 공무원 몇 명을 거느리고 미리 왔다.
마을 분위기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정확하게 오후 두 시가 되자 도지사 부인이 도착했다.
부인은 스물다섯 명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왔다.
상류사회의 부인들이 가난한 우리 마을에 모두 모인 것이다.

물론 나도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것일까?
도지사 부인은 서울에서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듣고,
문둥병자들의 교회를 섬기는 이 목사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부인은 그토록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부인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부인은 영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원했다.

"모두 교회로 가시지요. 이렇게 오셨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교회로 안내했다.

도지사 부인이 이 특별 예배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인은 떠나기 전에 내게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께 필요한 것을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떠나실 때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확실히 불쾌한 듯 했다.
그러나 자가용에 오르기 전에 어떤 할머니 한 분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명히 큰 영광이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 계속해서 그 부인을 위해 기도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 지체 높은 부인이 손씻을 물을 준비하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지체 높은'분의 방문이 있은 후 우리 마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국도와 연결되는 길에는 콘크리트가 깔렸고, 전화도 연결되었다.
그리고 두 주 후에는 내 책상 위에 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 왔다.

"목사님, 목사님을 우리 집에서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부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 부인은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우리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7.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모두들 들일을 하러 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근처를 돌아보려고 이웃 동네 쪽으로 갔다.

한 채소밭에서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뜯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잠시 후에 할머니는 비틀린 잇몸이 부끄러웠는지 당황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고, 부처님 오셨네! 저는 항상 살아계신 부처님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디."

할머니는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이 말밖에는 다른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목사'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가 누구다요?"

할머니는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주저앉아서 말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는 우리말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구원자'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은 오래 전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할머니나 저와 똑같은 사람이셨지만, 또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십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도와주시고
무엇보다 흉악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요.
예수님은 친구가 많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미워해서 죽여버렸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셨어요.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을 돕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예수님을 모든 나라에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우리한테 찾아온당가요?"

할머니는 내 말을 막고 물었다.

"그럼요. 바로 이곳에도 오십니다."

그 사실은 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할머니는 80년동안 부처님을 공양했다.
그러나 그 조각상은 눈 앞에서 항상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절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조상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만
의지할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였다. 하루가 다르게 힘이 빠지고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다.
그러나 할머니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희망의 빛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도 목사님처럼 예수님 백성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겄네요. 나이가 벌써 여든아홉이나 되았는디!"
할머니는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시면 할머니도 예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 저를 예수님한테 데꼬 갈 수 있으시오?"
할머니는 조급하게 물었다.
"내일 새벽 네 시에 영호에 있는 우리 교회에 오세요. 매일 새벽기도회가 있거든요.
거기 오시면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새벽기도회가 뭐다요? 예수님이 진짜 거기 있어요? 그러먼 제가 제일 좋은 옷 입고 가야 쓰겄네요."
"새벽기도회는 새벽에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적어 놓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그 책을 성경이라고 부르지요."
"근디 저는 글을 몰라요."
"걱정마세요. 예수님이 할머니와 말씀하실 길을 찾으실 테니까요. 그럼 내일 새벽에 꼭 오세요."

그날 밤 태풍을 동반한 큰 비가 밤새도록 퍼부었다. 길에는 물이 넘쳐 흘렀고 전기는 끊어졌다.
이런 날 노인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는 힘들겠지 .
그런데 성가대가 막 찬양을 시작했을 때였다.
교회 문이 열리더니 그 몸집 작은 할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성경 한 부분을 읽은 다음 설교를 했다.
설교 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고 난 후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왔다.
할머니가 아는 사람은 교회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진짜 고맙습니다. 진짜로 제가 예수님을 봤어요."

"그러십니까? 어디에서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목사님 옆에 계신 거를 똑똑히 봤당게요! 목사님하고 똑같이 생겼드랑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제가 볼 때에는 목사님이나 예수님이나 똑같당게요."

할머니는 확신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이 맞다.
우리는 곁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볼 수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또 하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아까 예배 시간에 혼잣말씀을 계속 하시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인자 제가 예수님 만났응께, 인제까지 저 살아온 거 예수님한테 싹 다 애기했당게요.
예수님이 내 얘기 다들어준께 정말로 좋아라우."

할머니는 고마워하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새로이 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근디 제가 성경책 읽을라믄 어째야 쓰까요?"

할머니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 나에게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말씀드린 대로 할머니는 매일 새벽 나를 찾아왔고,
내가 성경을 펴서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읽어나가면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었다.
이렇게 해서 할머니는 성경구절을 배우게 되었고 새벽기도 때마다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외워보이곤 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난 후였다.
할머니는 내가 가르쳐드리지 않은 성경구절들을 외우고 있었다.

"아니, 할머니! 어디서 그걸 배우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처음에는 목사님 따라서 외았는디, 예수님이 도와서 인자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았당게요."

마침내 할머니는 글을 깨우친 것이다!

그 후에 할머니는 아예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셨고, 손자들도 청년부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할머니가 직접 손자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8.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변함없는 사랑  

처음 영호에 갔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사연을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느 마을에서 젊은이 한 쌍이 결혼했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자 부부는 정말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에게 문둥병이 발병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내는 문둥병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소록도로 가야만 했다.

법적으로 남편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함께 소록도로 들어가 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아기를 부모님 집으로 데려갔다.
이별은 이 젊은 부부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문둥병자가 될거야. 그러면 내 마누라, 내 자식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아냐!"

그는 절망으로 절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 년이 지난 후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있는 섬을 찾아 갔다.
아내를 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에 문둥병으로 인한 흉터가 있긴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전 여기서 한 사람을 알게 되었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주저없이 말했다.

" 물론 남자겠지?"

남편은 분노와 질투를 감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제가 말하는 그분은 저뿐 아니라 당신도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그 자가 누구야? 대체 어디 있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군!"

아내는 그에게 작은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그것은 목사님이 선물로 주신 신약성경이었다.
소록도로 간 아내는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여보, 이 책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다시 희망을 줄거예요.
그것을 읽으면 저의 새 주인이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어요. 꼭 읽어보세요!"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별은 이 부부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의 소망을 아내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는 그후 5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아이를 언제까지 엄마 없이 키워야 하는지 .


그러던 어느 날 소록도에서 소식이 왔다. 아내의 문둥병이 음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아내는 육지에 있는 가족에게 올 수 있었다.
그들은 몇몇 다른 문둥병자의 가족과 함께 영호로 이사했고, 여기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건강한 아이들도 태어났다.

이렇게 해서 이 작은 마을은 점점 커져 갔다. 그들은 마을에 예배당도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웃 동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들은 언제까지나 똑같은 문둥이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그들은 작은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다.
겨울날 영하의 날씨에도 그들은 손뼉치며 찬양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교회에 오겠다는 목사님은 한 명도 없었다.


긴 세월이 흘렀다. 처음 영호에 온 사람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문둥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한 중년 부인은 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문둥병은 늘 그런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와 똑같이 이 마을에서 늘 하나님의 흔적이 있었다.

젊은 남편이 문둥병에 걸린 아내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문둥병자들에게 신실하셨다.
그 부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영호 사람들은 몸이 다시 나빠질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새 가정들이 늘어났다. 소록도에서 사람들이 왔다.
지금 영호에는 약 예순다섯 가정이 백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9.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어떤 부유한 농부 이야기  

영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문둥병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지역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약점보다는 그 약점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때때로 그들도 그것 때문에 더 힘겨워한다.
그래도 '문둥이'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꽃을 피웠다.
우리의 예배 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은 점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마을로 찾아왔다.
건강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사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제 남편을 좀 도와주세요.
그 양반이 지금 많이 아파요. 한의한테도 가보고 양의한테도 가보았는데 전혀 차도가 없습니다.
절에 가서 불공도 드려보고 스님한테 부탁해서 치성도 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했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네요.
우리 동네 애들 말을 들어보니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신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주머니가 이렇게 영호까지 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주머니,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는 물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그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왔지만 예수님을 알고 싶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진지하게 말했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리 들어오십시오. 좀 앉으시지요."

나는 성경을 펴서 신약을 몇 부분 읽어 주었다.
나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적적인 치료자나 마술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씀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모두 치료해주신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되는 분께 꼭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 들은 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부유한 농부의 아내는 몇 번씩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 했다.


며칠 후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희 집에 좀 와주세요. 우리집 양반이 예수를 믿고 싶대요."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 장로님을 모셔와 함께 출발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귀엣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말고요 목사님만 혼자 오세요."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가 다같이 갈 수 없다면 저도 안 가겠습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농부의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 함께 가시지요."

우리는 모두 이웃 마을로 갔다.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남자가 고통을 못 이겨 웅크린 채 방바닥에 꼬꾸러져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주변에 둘러 앉았다.
우리는 먼저 찬송을 몇 곡 불렀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집에서 미리 찾아온 성경 구절을 읽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농부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우리는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드렸다. 기도는 길었다.
그 농부에게 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치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는 것이었다.

농부는 이내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잠이었다.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며 우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돌아온 후에도 그 농부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에게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농부의 가족이 모두 새벽기도회에 나온 것이다.
병들었던 농부는 옷을 멋있게 차려 입고 가족들보다 먼저 교회에 왔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이 농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전에는 문둥병자들을 멀리하던 그가 이제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바로 뛰어다니며 자기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큰 믿음의 용기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