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잘살던 저희 집안은
제가 초 3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시고 어려워졌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주님께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그 후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다가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지 1년도 안되는 신입목사님입니다.)
초 3때 기도원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하나님이 우리집 사랑하셨더라면 그렇게 안하셨을" 꺼라고
원망했던 것만 생각납니다.
(하나님은 그때 제게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마음에 그렇게 울리도록 말씀하셨는데
저는 귀신아 물러가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가난이란 것을 숨기기위해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을 택했는데,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욕과 폭력과 허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학교 때 유도 선수가 되려고 운동하고,
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한다고 드럼을 치며,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말의 80%는 욕이고
선생님들에게 대들며, 학교에서는 가난한 집안의 꼴통아이였습니다.
평일에는 집에 얌전히,
금요일부터 주일까지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매일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칼로 죽이는 생각에 싸여있었고,
어머니는 동생을 건드리는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나갔고,
그저 뒤에서 폼만 잡고 있는 양아치 형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지내다가 고3때 교회에서
선생님과 욕하고 싸우고 더이상 교회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7월에 꼭 수련회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제게 하나님은
수련회를 가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수시 지원으로 찬양인도하는 모습을 촬영해오라는 것)을 주셔서
꼭 참석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저에게 임하여,
저는 그 날 하나님께 두 시간이 넘는 회개를 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십자가가 제 눈 앞에 선명하게 들어났고
누군가 거기위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너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내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는 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저는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제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찢어지게 했는지 느껴져 그날 펑펑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 입을 제가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갑자기 저는
한국말로 한다고 하는데 혀가 꼬아지고 방언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귀신아 물러가라" "귀신아 물러가라" 외치면서 두려워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자 저는 저를 제어할 수 없게 되고 춤추며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제가 하나님 만난 그 시각에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쓰러지셨습니다.
제가 분명 그 시간(저녁 9시)에 저는 방언 받은 시간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간호사랑 의사를 두셔서
1분만에 조치가 이루어졌고, 아버지는 사셨고, 저는 하나님을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 삶은 180도 바꼈습니다.
말에 80%이었던 욕이 사라지고, 주님이 제안에 계시다는 것이 인식되어
매일 주님께 무시로 기도하며 대화했고,
그 때 처음 진지하게 성경을 읽으며 눈물을 글썽거렸고
매일 2두시간씩 기도하며,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기억이납니다.
매일 예배는 눈물만 났습니다.
말씀이 다 저에게 하는 말 같았고, 교회에는 부족한 저와 친구를 통해 기도회가 결성되고
매일 나눔 하면서 눈물 콧물 질질짜며
그 때 받은 찬양이
"이제 내가 살아도 주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위해 죽네
그러므러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에 것이오"
(책에 이 찬양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 부터 주님은 제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너를 통해 내 양을 치겠다. 너를 통해 잃어버린 양들을 찾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나서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신학에 들어갔다가 1학기 하고 군대에가고 더욱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믿고 신학에 오게되었습니다.
제가 방황에 빠진 것은
왜 사람들은
major와 minor 대학원을 나누고 major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
교수님들 마저도 유학을 가라고 하시며,
진짜 공부하고 싶으면 한국에 있지말라고 하는 것일까?
왜 다들 한국 목회 현실은 암흑이라고만 말하는 것인가 였습니다.
과연 무엇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인가?
그런 고민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맹목적인 생각만 가지고
사람들의 말과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욕심과 좋은 대학원을
가고 유학을 가야 된다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러자 제 욕심은 너무 커졌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던 마음보다 오늘 해야될 일과 스트레스와 공부하면서 강팍해져가고
모두가 경쟁상대처럼 여겨졌습니다.
누구보다 더 책상에 많이 앉아 있어야 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부만이 오직 살길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공부만 열심히하면 그게 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면 갈 수록 제 마음은 답답해져 갔고, 먼가 이상했습니다.
그렇게 오다가 방학이 지나고 저는 갑자기 제안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많은데, 그렇게 살아가는 믿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시는 적은 돈이지만, 그것을 의지하며 살다보니
돈이 필요하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는 부모님께 바로 전화했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안전한 지대 안에 놓여있어서 믿음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안전한 지대 안에서
나의 믿음이 아닌 부모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저 형식상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는 점점 커지는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지식을 저의 마음을 안식시키는 안전하다고 안전하다고 외치는 약으로만 사용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 지식과 경험만을 의지하며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되" 기도는
어느 순간 저에게 지식의 체계를 쌓는 명상의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괴로움 시간 속에서 굳이 신학을 해야하나? 선교사로 나가서 이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을 알고 말씀을 읽음으로 알고
그 후에 신학을 함으로 그 경험을 적립하고 정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저를 휘어잡았습니다.
나중에 그저 이런 믿음 가지고 결혼하고 자식 생기면,
저는 그저 이런 굴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믿음 있는척 말만 하고 있을 제가 두려웠습니다.
주님 오신다는 데,,, 주님 다시 오신다는데,,
그때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텐데.... 그 날에 주님과 사랑이야기가 없을 생각에...
저는 더욱 선교지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된다고, 현실을 말해줬고,
선교도 말씀 만으로는 안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잠시 없어 졌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공부라는 것이 다시 저를 누르기 시작했고,
저는 또 모든 이야기에 지식적으로 옳은 정답만 말하면서,
이건 잘못됐어 이건 맞아 ..그리스도인이 그러면 안되지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후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때로는 저 자신이 역겨웠습니다.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정답만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제 마음은
자신이 옳은 것 마냥 저 자신을 높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강시간에 이민교 선교사님을 만나뵙고,
저 분은 성령님의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님 안에 불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에 제가 찬양인도를 해야되서 말씀을 읽는데
가슴부터 배 팔까지 어떤 뜨거운 것이 말씀과 함께 저를 휘어잡고
말씀이 살아있어서 저로 견딜 수 없게 하셨고,
그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 두시간 세시간을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 말씀에 둘려쌓여 뜨거움에 아버지 아버지만 외쳤던 그 기억이 생각났고,
그것이
선교사님이 말씀 하시는데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꼭 물어보고 싶어 "신학은 꼭해야됩니까"라고 여쭤봤습니다.
사실 우느라 뒷부분은 "넌 삶을 생각하니까 사람이야"라는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교사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신학이 너를 눌러도 변할 수 없는거야.
그리고 눌리면 안되라는 말씀이
저를 울렸습니다.
말씀에 휘여잡여 기도하며 주님 기쁘게 찬양하고 주
님 음성만으로 기뻐하던 때가 그리워져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시무룩해서...주님 사랑하는데...나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매일 고민은 저를 어둡게 만들었고 자유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주님을 향한 지식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신학이란 지식을 동상으로 세워서 그 동상만 바라보며
그저 자신의 위안을 얻고 있었습니다.
<복음에 빚진 사람>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 처음 만났을 떄 제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록도에 찾아가신 선교사님의 모습은
서울에 올라와 노숙자들을 찾아다니며 아버지라 부르며 밥도 같이 먹고
돈이 없어 빵만 사가시던 할아버지께 우유를 사들이고,
구걸하시는 할머니 손에 돈을 꾹넣어드리던 모습과 여러가지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계층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더욱 주웠습니다.
그리고 나를 빚어가시는 주님 앞에 순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신학교에 와서 저의 교만한 모습을 보았고,
많은 고민은 저를 깨부수고,
제가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 생각이 너무 많으면 주님의 뜻을 들을 수 없고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생각을 버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내 이웃에게 제가 대접받고 싶은데로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누가 되었던지 간에
달라고 하는자에게 주며, 나의 것으로 입히며, 곧
사랑은 내가 죽어야 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 주님 오실 때에 물어보실 질문에 대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깨어 있었느냐?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와 중보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령의 기도와 중보기도는 제가 죽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나만 위해 구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남겼느냐?
분명 제가 신학을 하는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을 남기지 못하고 나만의 유익을 위한 신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에게 목회를 하게 하시면(그저 현실 불가능한 이상일 수 있지만,)
한국에 소아 재활 센터가 하나뿐이라고 합니다.
소아 센터를 짓고, 과부들과 고아들과 소외된 계층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식사를 나누는 공동체 삶이 연결되는 공동체로
더욱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교회 안에 기업하시는 분들과 연결하여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그런 뜨거운 마음이
다시금 자리 잡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를 빚어가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겠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주인이시기 떄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준비하시려고 보내신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저 5분 쓰임 받고 버림 받더라고 주님이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셨다는 마음에 감사하고,
사용하셨다는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정말...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등 떠미심을 느끼길 원합니다.
선교사님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정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놈인데.. 이렇게 신경써주시고 책도 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자유와 기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공부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 매일 도서관에만 있는데도...총신대를 가야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너무나도 힘듭니다.)
다들 총신대 가라고 하시고, 점수 4.0은 넘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힘듭니다. 자유함이 없습니다.
다들 신학을 하면 총신대는 가야된다고 말하고, 아니면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하는것..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