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글쓴이 : 손짓사랑 날짜 : 2015-04-29 (수) 16:05 조회 : 703
 
내가 소록도에 머물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죽어갔고 이틀에 한 번꼴로 장례가 치러졌다. 나는 장례식이 있다고 하면 목탁을 들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살아계신 분에게는 아무리 부처를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니 나는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죽은 영혼을 천도하는 일에 매달렸다.
내가 천도재를 드리면 그 옆에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이 장례 예배를 드렸다. 나는 나대로 목탁 치며 염불을 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찬송을 하며 기도했다. 그렇게 장례예식을 치르다 보면 어느새 서로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찬송 소리가 높아지면 이에 질세라 나의 목탁 소
리가 빨라졌다. 그러면 그들은 더욱 목청껏 찬송을 불렀고, 나는 목탁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내가 드리는 천도재는 슬프고 엄숙했던 반면 소록도 나병 환자들의 장례예식은 항상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장례식에 올 때에도 웃으면서 왔다. 그러고는 먼저 죽은 이에게 이런 인사를 했다.
“왜 네가 먼저 가냐? 내가 더 빨리 가야 하는데….”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워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장례식을 하늘나라로 옮겨가는 환송식이라고 불렀다.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정말 기쁨에 차서 찬양을 했다.
--- p.54

어느 날인가 독방에 갇힌 사형수에게 예수를 전하려고 조용히 찾아갔다. 독기가 시퍼렇던 그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내 눈을 확 뽑아버리겠다는 등 악담을 퍼부었다.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고 나는 감방 문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죄인인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만 하면 그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고 예수처럼 다시 살 수 있다”는 복음을 소리쳐 외쳤다.
독방의 철문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서는 저주가, 바깥쪽에서는 복음이 오고 갔다. 예수께서 당신의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음을 얘기하는데 사형수가 갑자기 독방 안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가더니 이내 뭔가를 들고 나를 향해 와락 끼얹고는 악을 썼다.
“나만 죄졌냐? 나보다 더 악질들도 있는데 왜 나만 죽어야 하냐! 하나님이 있다면 왜 그들은 가만히 두냐! 예수가 어디 있다는 거냐?”
내 얼굴에는 사형수의 똥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감방 안 화장실에 다 받아놓은 똥물 그릇을 내 얼굴에 뿌려버린 것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를 아찔하게 했던 것은 똥물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손가락질하는 그 사형수의 절규 때문이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도 저렇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대적했었는데….’
똥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냄새나는 얼굴로 나는 나의 죄를 절절히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 저도 옛날에 저런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옛날에 저렇게 하나님 없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 p.78-79

실제로 우리가 사역하던 때에 이슬람 강경파의 테러로 추측되는 사건이 일어나 우즈벡에 계엄령이 선포된 일이 있다. 타슈켄트 중심부 여섯 군데에서 동시다발로 폭탄이 터져서 민간인들이 숱하게 죽어나간 사건이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모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고 시내에는 군 차량들이, 거리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되었다.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치러질 때는 관공서마다 조기를 달았고 모든 매체에서 추모방송이 계속 보도되었다.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죽음이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입을 벌리고 우리 주변을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이다. 이 시기 우리 농아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특혜 가운데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주의 열성으로 참 많은 은혜를 받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심히 혼란스러웠던 그 해 부활주일이 가까웠던 때였는데 예배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절기 예배였으므로 성도들이 더욱 많이 모일 것에 대비해 넓은 장소를 알아봐야 했다.
이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가 돌았기 때문에 특히 더 조심해야 했다. 보안상 문제가 되어 그동안 예배드렸던 장소마다 거듭 취소가 되었다. 다음 날이 부활주일인데도 어느 누구도 부활절 예배 장소를 정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얼마나 급했던지, 예배 장소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곳인 나이트클럽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진통을 겪다가 부활주일 당일에 극적으로 장소가 정해졌는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예배 장소로 허락해 주신 곳은 학교 강당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 널따란 예배 장소에서 감탄하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했다. --- p.159-160
[예스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