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왜 장애인이 있을까...?

글쓴이 : 활산 날짜 : 2015-11-15 (일) 23:28 조회 : 630

이 땅에 왜 장애인이 있을까...?


나는 왜 건강한 사람일까...?    이러한 물음들을 갖고 살았습니다.


 


저는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소록도 한센병 환자 촌에 원불교를 개척하러 갔다가 1988 3월에 소록도 법당 안에서 염불하던 중에 혀가 돌아가는 성령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소록도에 계신 분들이 저를 위해 예수믿으라고 7년 동안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육신의 빚진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을 통해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장애인들을 향한 빚진 자의 마음으로 1993 5월에 러시아(모스크바, 레닌그라드)를 시작으로 공산권 이슬람선교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알라()의 저주로 태어났다" 라고 인식되어 살고 있는 이슬람 땅의 장애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장애인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7 3월 한국 기아대책본부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에서 NGO 사역을 팀 사역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약사로서 의사들과 함께 이동진료를 통해 육신이 연약한 자들을 돌보아 주었고, 저는 축구사역으로 장애인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아대책본부에서 진행해 오던 우즈베키스탄 병원설립이 무산되면서 저희들은 1999 9월 미국 영락재단(국제 NGO)안에서 농아 part를 맡아서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NGO 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역은


1.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으로 아시안게임을 3 (2000/대만, 2004/말레이지아, 2008/태국) 출전했습니다.


2. 수화책자(러시아, 영어, 우즈벡어, 한국어)를 출판하여 문맹 농아들을 계몽하는 일들과 수화통역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3. 한 달에 한번씩 농아들에게 세상이 흘러가는 뉴스와 친교가 있는 차이와 빵 그리고 이,미용을 통해 사랑방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NGO 사역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이슬람 땅에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농아가 아니었으면 예수를 몰랐을 텐데...이제 농아가 되어서 예수를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하는 장애인들의 행복이 이슬람 땅에서 고백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먼저 신앙을 고백한 농아들이 또 다른 지체 장애인들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팔다리가 붙어있어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들을 찾아가서 집안청소와 목욕봉사로 섬기고 있으며, 시각 장애인학교에 찾아가 이,미용으로 섬겨주는 일들을 농아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앙아시아 경제의 허브라고 하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농아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는 현실을 통해, 장애인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슬람의 움마 공동체를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슬람 땅에서 사역하는 저에게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일자리 창출이 이 시대에 필요한 또 하나의 전략선교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자본을 투자함으로 농아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콩나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콩나물을 본적 없는 우리 농아들이 실수해 가며 콩나물을 키워가는 시간들을 통해 2006 11월부터 알마티에 있는 한국가게와 한인교회에 춤추는 콩나물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2008 3월에는 두부를 생산하여 행복한 두부라는 상표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알마티에 있는 농아들이 콩나물과 두부를 판매하여 얻은 이익금의 일부를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즈스탄 농아들에게까지 흘려 보내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콩나물과 두부를 통해 장애인들의 자립공동체가 알마티 땅에 모델로 세우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콩나물과 두부 같은 소자본을 통해 농아들이 일을 하면서 기쁨과 자부심도 느끼며 일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일자리(일터교회)들을 세움으로, 알마티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에 농아들에게 경제적인 자립을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이상의 일터교회가 장애인 뿐 아니라 현지교회 자립을 위해서도 장애인들이 도구가 되는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카자흐스탄에서도 농아축구팀을 맡게 되어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컵 대회에 출전하였고 금년 9월에는 농아인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농아축구팀을 창단하여 복음의 문이 닫힌 나라와 도시들에게 복음의 문이 열릴 수 있는 도구로 농아축구팀이 쓰임 받는 것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과 함께 시합을 함으로 장애인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육신이 건강한 농아들이 더 힘들고 어려운 다른 장애인들을 섬길 수 있는 축복의 통로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농아축구팀이 쓰임 받기를 소망해 봅니다.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1년째 병상에 누워 사는 하반신 마비의 35세 농아인(체르까스)입니다.


원래 축구선수로 활약하였으나 하반신 마비가 됨으로 부인마저 떠나고 이제는 늙으신 홀어머니만이 아들을 수발하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친구하나 없지만 어머니는 동네시장에서 해바라기씨를 팔아서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던 그 가정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5층 아파트에 살면서 몇 년째 햇살을 보지 못하던 그를, 농아인들이 모여사는 까라까무쉬 동네 1층으로 이사를 시켰습니다. 하반신 마비이기에 상체를 훈련시켜 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밖을 나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를 영접함으로 이제는 초등학교 아이처럼 성경말씀을 하나씩 배워 나가고, 찬양을 외우며 기도하고 농아들이 축구하는 것도 스스로 외출하여 구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 어둠과 죽음이 물러가고 빛과 생명이 찾아와 이제는 병상에 누워서도 매일 찬양하며 감사하며 예수님만 믿고 살겠다는 간증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들을 한걸음씩 소리 없는 침묵의 손짓들을 통해 해나가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 8)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 시작한 사역은 누가복음 4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도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기만을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앞으로 더욱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세워진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Local NGO)이 든든히 서 나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꽃과 자랑할 수 있는 열매를 거두는 일에 중점을 두는 NGO 사역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적인 NGO 사역은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저 같은 자가 50년을 훈련 받아 하나님이 5년을 사용하신다고 해도 하나님은 결단코 손해보시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하기는 이슬람 선교의 한 획을 긋는 NGO 사역으로 한 그루의 예수나무를 이슬람 땅에 심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