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늘스럽게 살아가는 복음에 빚진 사람.
카자흐스탄 이민교 선교사
이민교 선교사는 지난 8년간 우즈베키스탄 농아축구팀 국가대표 감독으로 살아왔고, 지금은 6년째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다양한 일터교회를 개척하며, 장애인 생활공동체인 ‘손짓사랑’을 섬기고 있다. 그에 대해 얘기할 때,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법당, 소록도, 교도소,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농아인...그리고 예수님이다. 소설 같기도, 판타지 같기도, 때로는 성서 같기도 한 범상치 않은 그의 삶의 족적을 따라가 보자.
<내 영혼의 고향...소록도>
뿌리 깊은 원불교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이미 대학시절 원불교 교무가 되기 위한 수련을 할 정도로 원불교에 헌신한 그였다. 유난히도 종교심이 강했고, 자주 삶에 대한 고찰에 빠지고는 했던 젊은 시절. 원불교 정녀가 된 그의 누님은 사람이 살면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소록도에 가보라고 권하였다. 그렇게 1981년 겨울, 한 젊은이가 소록도 섬에 첫발을 내딛었다. 소록도에 처음 들어갈 때만 해도 원불교에 심취해 있던 그는 예수쟁이가 되어 그곳을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선교사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았다. 소록도 나병환자들도 그에게는 사랑의 대상, 즉 부처님을 전해야만 할 전도 대상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뭉개지고 썩은 육신을 가지고도 예수님을 찬양하며, 부처를 전하는 이 선교사에게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하는 믿음의 대가들이었다. 이 선교사는 나병환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눈썹을 깎고 그들의 침 까지도 핥아 먹으며 병이 전염되어 스스로 나병환자가 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지금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다. 나병환자들은 이 선교사에게 병을 전염시키는 대신 예수그리스도를 전염시켜버렸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예수그리스도의 바이러스가 온몸과 영혼에 이르기까지 그를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법당에 찾아오신 예수님>
1988년 3월2일은 그의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 법당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했다. 그런데 염불은커녕 엉뚱한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며칠후 며칠후...요단강 건너가...”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것은 소록도 나병환자들의 장례식장에서 종종 듣던 찬송가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의 후렴구 였다. 점점 혀가 돌아가더니 방언이 터지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법당을 나뒹굴며 놀라운 성령님을 체험하게 되었다. 25년 가까이 불교도로 살아온 그가 한순간에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영적인 공격이 굉장히 심해졌다. “영적인 세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영적공격과 혼란이 심한 시기였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이 세 문장을 끊임없이 고백하면서 영적환란의 시기를 이겨내었습니다.”
그 무렵 이 선교사는 법무부 병력으로 차출되어 전주교도소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성경을 읽었고 재소자들에게 찬송을 배우면서 핍박도 받았지만 마침내 교도소에서 세례도 받았고 동료들을 위해 예배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하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한 시간들은 이 선교사를 영적혼란 가운데서 굳건히 설수 있도록 붙잡아 주었고, 그는 점차로 굳건한 신앙의 반석을 다져나가게 되었다.
<장애인, 천국의 비밀코드>
이 선교사는 장애인사역에 삶을 바친 사람이다. 약 14년 전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들어갈 때 부터 이슬람 땅의 장애인들을 가슴으로 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농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선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학적으로 장애인은 지적장애,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이렇게 네 분류로 나뉩니다. 농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분야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라고 인식을 합니다. 그러나 농아들은 대화를 해보지 않는 이상 장애인이라는 것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장애학적으로 농아를 이중 장애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정상인들 속에서 살지도 못하고, 장애인들 속에서도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농아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비전은 이들을 잘 훈련시켜서 다른 장애인들을 돕는 자들로서 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농아들은 육체가 건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땅에서 신의 저주로 인식되는 장애인들이, 서로를 섬기는 것(장애인이 장애인을 전도하는 것)으로 선교를 꿈꾸는 이 선교사는 이 땅의 장애인들은 우리에게 보내주신 또 다른 나의 모습임을 말한다.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육체에 빚진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제각각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 장애인들은 천국을 열 수 있는 비밀코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습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 일터교회>
지난 8년 동안 온갖 사랑과 정성으로 사역을 하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추방을 당한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카자흐스탄으로 인도하셨다. 그곳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어지고 있는 사역은 일터교회 사역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교사에게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선교 전략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현지인들이 사장이 되는 꿈 프로젝트 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사장이 되어서 후일에 제가 그곳에 없더라도, 스스로 자립하고 자생할 수 있도록 현지인들의 리더십을 키워주는 것이지요.” 일터교회 1호점인 ‘춤추는 콩나물교회’를 시작으로 ‘행복한 두부교회’, ‘뻥튀기 교회’가 세워졌다. 일터교회 수입의 70%는 본인들이 생활비로 사용하고, 30%는 일터교회의 본부와 같은 ‘손짓사랑 공동체’에 다시 헌금하도록 되어있다. 그 헌금을 모아서 더 가난한 키르키즈스탄 농아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일터교회를 향한 이 선교사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베들레헴 떡집교회, 비닐하우스 교회, 재봉틀 교회, 자동차정비소 교회, 미용실 교회 등을 세워서 장애인들이 스스로 사장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매년 12월3일은 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이 선교사는 올해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의 지체장애인 화가 3명을 카자흐스탄에 초청하여 작품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이 분들의 그림은 가슴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금번 전시회를 통해 이슬람 땅의 장애인들에게 예수님의 향기가 흘러 들어가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장애인 화가들의 이동을 위한 전동휠체어와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설계된 봉고자동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12월은 너무 추워서 10월쯤에 행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로인해 9월까지 장애인봉고차 1대와 전동휠체어 3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선교사가 생애 마지막 날 듣고 싶은 한 가지 말.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먼 훗날 장애인들이 이 선교사라는 사람을 기억할 때에 창1:31절 말씀처럼 ‘그와 그의 사역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는 고백을 듣고 싶다는 그는 이 땅위에서 하늘스럽게 살아가는 ‘복음에 빚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