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사랑처럼(열왕기하 7장 9절)

글쓴이 : 활산 날짜 : 2015-11-11 (수) 23:09 조회 : 856

"내일 아침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다"(9)

 

바로 그날,

네 명의 문둥이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성문 앞에 앉아 있었다.

천형으로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괴로웠고,

사랑하는 가족과 강제 격리되어 마음까지 의지할 데 없는 신세였다.

아람 군대의 포위로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마저 끊겼으니, 이젠 주려 죽을 형편이었다.

 

우린 왜 이렇게 앉아서 죽어야 하지? 성안에 들어간다 해도 모두 굶어 죽을 형편이니 희망이 없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굶어 죽을게 분명하잖은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차라리 아람 군대의 진지로 들어가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준다면 다행이고, 죽이면 죽는 거다.”

 

그들은 황혼 무렵에 적군 진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여서 어둠이 덮이기 전에 적군 진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네 명이 접근하는데도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침묵 이상의 적막이 진지를 덮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진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진지가 텅 비어 있는 것이었다.

이 천막 저 천막을 들추어 보았지만 모두 비어 있었다.

적군이라고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물건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저녁을 먹다가 도망친 듯 음식이 풍성하게 남아있었다.

 

황혼 무렵,

아람군대 군인들이 이제 막 저녁식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지축을 흔들어대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큰 군대가 진격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의 창과 칼과 방패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수많은 적군이 기습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분명 대군이 공격해오는 소리다!

이스라엘이 몇 나라에서 원군을 지원 받아 대규모로 기습 공격을 해오는 거야!

꾸물대면 다 죽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일단 몸만 빠져 나가라.”

 

24시간이면 회복된다고 엘리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네 명의 문둥이가 다가오는 소리를 증폭시켜 대군의 소리로 들리게 한 것이었다.

 

문둥이들은 좋은 음식으로 배가 터지도록 먹은 후 천막들을 뒤져 귀금속을 잔뜩 챙겼다.

이제 부자가 된 문둥이들은 잠시 다음 행동을 생각했다.

그 때 한 문둥이가 말했다.

 

우리만 배부르면 되는 거야? 성안에서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들의 가족도 거기 있지 않은가?”

그 생각을 못했군. 우리 모두 속히 성으로 달려가서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려야 해.

적군이 도망했다는 걸.”

 

이미 짙은 어둠이 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편한 몸을 잽싸게 움직여 굳게 잠긴 사마리아 성문 앞에 이르렀다.

 

우리가 방금 아람 진영에 갔다 왔습니다.”

문둥이가 성 안의 병사에게 소리쳤다.

 

적군이 다 도망치고 없습니다. 천막들이 다 비어 있습니다.

장비들을 그냥 둔 채 모두 가버렸습니다. 우리 넷이 똑똑히 보았습니다.”

 

문둥이들을 잘 아는 병사는 이상히 여기면서도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직속 대장에게 보고했고,

대장은 왕궁으로 달려가 전했고, 이내 왕에게 보고되었다.

아람 군이 계략을 꾸민 것이리라.

그자들은 우리가 굶주리고 있는 실상을 알고 있어.

우리가 성 밖으로 나가면 우리를 사로잡고 성을 점령할 것이다.”

 

왕은 문둥이들의 보고를 믿지 않았다. 한 신하가 말했다.

사실 여부를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 말에 왕은 곧 군사를 보내 확인하도록 조치했다.

다녀온 군사들은 문둥이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아람 군대가 어찌나 황망하게 도망쳤는지, 그들의 많은 군사장비와 무기들과 음식물이 지천이고,

병사들의 군복과 소지품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문은 빠르게 성안에 번졌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성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아서 함정일 수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망설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몇 명이 성 밖으로 나갔고, 아람 진영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그 뒤를 무리 지어 달려갔다. 순식간에 성난 밀물을 방불케 했다.

넘어지고 다치고 비명 지르며 달려갔다.

 

아무래도 큰 사고가 날 조짐이었다.

왕은 급히 경호대장에게 명령하여, 성문에서 질서를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몰려 나가다 보니

넘어져 밟혀 죽는 사람도 생겼다.

 

발 빠르게 아람의 진영까지 갔다 오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을 뿐만 아니라

밀가루와 보릿자루 등을 가져와서 성문 밖에서 값을 불러댔다.

 

, 보리 두 말에 한 세겔입니다.”

고운 밀가루 한 말에 한 세겔이오!”

 

경호대장은 엘리사에게 들은 말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지켜보며

어안이 벙벙하여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파도처럼 밀려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넘어지고 말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이 그를 밟고 지나갔다.

엘리사의 말대로

그는 그 흔해진 먹거리를 전혀 먹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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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산 15-11-11 23:27
 
“보리 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꽃 청산(靑山)/어린 때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피ㅡㄹ 닐니리.”

‘문둥이’ 시인으로 불린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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