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동진 <15>

글쓴이 : 겨우나무 날짜 : 2018-05-29 (화) 08:43 조회 : 560

[역경의 열매] 조동진 <15> 


은사 박형룡 박사에게 이끌려 기독교 문서운동


지리산 사역 17개월 만에 막 내려… 출판사 ‘은총문화협회’ 설립


[역경의 열매] 조동진 <15 > 은사 박형룡 박사에게 이끌려 기독교 문서운동 기사의 사진
조동진 목사(앞줄 가운데)가 구례읍교회를 떠날 무렵인 1953년 1월 27일 구례연합제직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나의 지리산 사역은 1951년 8월부터 1953년 1월까지 17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18여년의 긴 세월을 살았던 것처럼 여겨진다. 52년 겨울, 지리산 밑에서 내 인생을 바꿔 놓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은사인 박형룡 박사께서 푸른 잉크로 또박또박 친히 쓰신 서신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기독교서회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손에 들어가 정통주의 보수신학 도서출판의 길이 막혔네. 어서 속히 부산으로 와서 나를 도와 기독교 도서출판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주시게.”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은 갱지로 된 붉은 괴지 두 장에 쓴 문구다. 황공하게도 “敎弟 朴亨龍 頓首 再拜(교제 박형룡 돈수 재배)”라고 쓰셨다. 너무도 지나치게 낮아지셔서 나의 지리산 생활 청산을 강권하셨다.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여드리니 어머니는 내가 지리산 밑에서 해방된다는 기쁨에 눈물까지 흘리셨다. 교회엔 부산에 다녀온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부산까지는 여수에서 배로 갔다. 타야 할 배의 이름은 창경호였다. 그런데 부두에서 여수교회의 한 집사가 창경호보다 몇 시간 늦게 떠나는 자기 회사 부정기선이 있다고 했다. 배는 작지만 철선으로 튼튼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호의에 배를 바꿔 탔다. 삼천포를 지나면서 기상이 악화돼 바람과 파도가 거셌다. 여수 부산 간 연락선을 여러 번 탔지만 이날은 달랐다. 뱃멀미가 심했다. 배는 광풍 속에서 이른 새벽에야 겨우 당도했다. 

부산에서 만난 친구 이정윤은 나를 보더니 “조형, 너 살아왔구나!” 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부산일보 호외를 보여줬다. ‘麗水 釜山間 旅客船 沈沒, 二百五十名 乘客 溺死(여수 부산간 여객선 침몰, 이백오십명 승객 익사).’ 

나는 그날 대구로 가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박 박사의 뜻을 받들어 기독교문서출판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제일 먼저 출판할 책은 ‘표준성경주석’과 ‘조직신학’이라고 했다. 출판사 이름도 정했다. ‘은총문화협회’라고 했다. 

구례로 돌아갔더니 아버님이 전에 없이 내 손을 잡으시고 어머님은 내 온몸을 쓸어 만지셨다. 창경호를 탔다던 목사는 죽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구례군 내에 퍼지고 있었다. 집안 식구들도 내가 온다던 날이 일주일이나 지났어도 소식이 없자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 것이다.

나는 교회 장로님들에게 대구에서 박 박사를 만난 일과 그곳에서 결성된 기독교 문서운동 계획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순천노회는 무명 목사인 나의 중앙 진출을 대견하게 여겼다. 부모님은 더 남아계셨다. 아버지는 구례 곡성 지역 전도사로 일을 보셨다. 목사 안수를 받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기독교서적을 더 많이 보셨고 성경도 달달 외우셨다. 아버님은 이후 63년까지 순천노회에서 많은 일을 하셨다. 덕분에 순천 작은 마을의 교회에서도 여러 명의 목사가 나왔다. 박종구 월간목회 발행인도 그중 한 명이다.

그동안 기독교출판사 설립과 사업계획이 진행됐고 출판사 이름은 그대로 은총문화협회로 하고 박 박사를 총재로, 나는 대표이사가 됐다. 우리는 박 박사의 6·25 피난 시절 설교집부터 내기로 했다. 이름은 ‘우리의 피난처’였다. 이후 나는 ‘기독공보’ 편집국장으로 가게 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공식 기관지였고 국내 유일의 기독교 신문이었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경래씨가 당시 기자로 활동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53738&code=23111513&cp=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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