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그저 컨탠츠 전달을 위한 활자 매체일 뿐, 보호가 필요한 유산이 아니다.
그런데 왜 반시장적 통제를 요구하는 걸까?
기록에 대한 보존이 필요한 거면 도서 시장의 가격은 상관없다.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근간이 ‘도서 소비문화’가 타 콘텐츠 대비 더 나은 가치가 있다는 막연한 믿음 때문인 것 같은데
(실제 호소하는 맥락도 동일하고)
수요가 없지만,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지원받는 문화제 취급을 요구할 거면 대체할 수 없는 독보성을 가졌는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책을 소비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후자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
정말 오지게 책을 안 읽는 가운데(문체부 발표 기준으로 성인 7.5권. 이마저도 계속해서 줄어드는 중이고 10명 중 4명은 한 권도 안읽는다.)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감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활자 문화에 대한 막연한 경외가 있다.
개나 소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임에도 글 밥 먹는 사람들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
굳이 활자에 권위를 부여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책을 꾸준히 구매하는 실 소비층 입장에서는 근 5년간 국내 문학상 받은 작품들만 봐도(특히 젊은작가상) 대부분 동의할 수 없는 수준이란 것을 안다.
물론 생산자 입장은 다르겠지만, 우리 콘텐츠의 가치가 정말 대단한데 소비자가 개눈박이어서 몰라본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절박한 자존감이라면
그냥 싸고 좋은 외국책만 보급하는 것이 출판인으로서 양심적인 선택이고 독자로서는 더 나은 문화생활 향유의 기회일 것이다.
책이 제값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막 나온 신간이거나 시장의 수요가 높다면 할인이 왜 필요하겠는가?
다만 재고가 쌓일때마다 파쇄해서 갖다 버리느니 50~80% 할인 덤핑으로 뿌리는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다.
저렴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지도 않을 것을 막 사다가 집에 쌓아 놓는다.
선물로도 남에게 줄 수 있고 그렇게 부담 없이 구매해야 전반적인 시장이 커진다.
나만 해도 스팀 라이브러리에 설치도 하지 않은 게임이 100개가 넘어가고 있다.
지식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데 왜 활자에 불변의 가치를 요구하는 걸까?
킹오브 파이터 95를 2021년에 10만 원 주고 살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책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인쇄된 종이 묶음이 뭐 그리 대단하길래 작가들은 앞뒤도 맞지 않는 촌극을 벌이는 걸까?
도서정가제 하는 8년 동안 동네 책방 다 망했는데 그 놈의 동네 책방은 도대체 언제쯤 부활할지 궁금하다.
작가들이 아무 데나 갖다 쓰는 무안단물 내지는 만능양념이 되어버린 이후로 동네 책방이라는 워딩은 이제 세상 물정 모르고 던지는 나이브한 동정,
그 무언가로 우스꽝스럽게 변질되어 버렸다.
오늘 날의 온갖 문화 매체들은 제발 자기네 물건을 봐달라고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콘텐츠들을 뿌리고 있다.
온라인 게임은 부분 유료화라는 이름으로 몇 시간을 하던 마음에 들어 과금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공짜다.
철 지난 드라마나 영화들은 IP TV에서 500원 내지 자체 광고 서너 편에 무료로 뿌려진다.
유튜브 스트리밍 음원은 아예 돈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새 시대의 콘텐츠는 모두 시장 자체를 키워 살아남았다.
책이 살아남으려면 마찬가지여야 한다.
질 좋은 양장 커버에 컬러 인쇄된 한정판을 비싼 값에 팔더라도 전자책과 같이 저렴한 원가에 무한정 보급 가능한 수단이 존재해야 파이를 늘릴 수 있다.
독서라는 문화가 세대를 아우르는 지속 가능하고 지적인 세계를 원한다면 종이 쪼가리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종이책이 얼마 받는다고 전자책도 얼마 받아야 한다든지 같은 구시대적 발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모두가 책 보는 사회는 도래할 수 없을 것이다.
윙윙거리는 모기의 소리만큼 심술과 적의를 그토록 작은 부피에 응 집시킨 것은 없다. - 엘스페스 헉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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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개성과 인간과의 관계는 향기와 꽃과의 관계이다. - 시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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